[대전/충남]뇌경색 시아버님 수발 들며 “아빠 좋아?”

  • 입력 2007년 5월 15일 07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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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효부 외국인 며느리 말하는구먼.”

9일 낮 12시경 충남 논산시 채운면 화산2리. 논일을 하다 잠시 정자나무 밑에서 휴식을 취하던 주민 최창모(61) 씨는 기자가 체안 반 사린(22) 씨의 집을 찾자 바로 알려 줬다.

캄보디아 프놈펜 출신인 사린 씨는 7일 논산시가 주는 효부상을 받았다.

기자가 집에 들어섰을 때 사린 씨는 시아버지인 강대식(82) 씨의 면도를 해 주는 중이었다. 턱에 비누칠을 해 수염을 깎은 뒤 바가지에 받아 온 물과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 내는 손놀림이 능숙했다.

강 씨는 2002년 뇌경색이 온 뒤 부축을 받아야만 집 주변을 간신히 산책할 수 있을 정도로 거동이 불편하다.

사린 씨는 이 집 5남매 중 막내이자 외아들인 덕환(37·전기안전관리회사 직원) 씨와 2005년 결혼했다. 캄보디아 현지와 국내에서 각각 7월과 11월에 두 번의 결혼식을 올렸다. “미리 사진을 받아 보기는 하지만 현지에서 여러 명을 선보고 하루 이틀에 결정을 내려야 해요. 하지만 바로 이 사람이 내 천생배필이라는 느낌이 왔습니다.”

덕환 씨는 “누나들이 가끔 친정에 왔다가 아내가 아버님의 면도를 해 드리는 것을 보면 ‘우리도 저렇게는 못했는데…’라며 놀라곤 한다”며 “더구나 별로 말이 없는 편인 저를 대신해서 하루 종일 아버지의 말벗도 돼 주니 고맙기만 하다”고 말했다.

사린 씨는 시아버지가 무료해 보이면 어깨를 주물러 주거나 부축해 산책을 나가면서 서툰 우리말로 “아빠 좋아?”라고 확인하듯이 묻는다. 병을 얻은 뒤 웃음을 잃은 강 씨의 입가엔 그때마다 미소가 번진다.

사린 씨는 한 달에 두세 번 시아버지의 목욕도 시켜 준다. 올해 설 명절 직전에는 만삭인데도 이 일을 했다.

그는 시집 온 후 처음에는 방울토마토 비닐하우스에서 일해 일당 중 1만 원은 시부모에게, 나머지는 고국의 부모에게 보냈다. 요즘은 시아버지가 병 수발에 고생한다며 용돈을 준다.

3년 이상 남편의 병 수발을 했던 강 씨의 부인 김용희(76) 씨는 요즘에는 아예 며느리에게 남편을 맡기고 방울토마토 비닐하우스 일을 다닌다. 그만큼 며느리에 대한 믿음이 깊다.

효부상 추천은 마을 노인회가 했다. 이장 이길재 씨는 “자기 부모도 병 나면 모시기 꺼리는 것이 요즘 세태 아니냐”고 말했다.

사린 씨는 지금은 김치찌개부터 밑반찬까지 한국 음식을 모두 만들지만 한국어만은 아직 서툴다.

“떠나올 때 부모님이 시부모와 남편 봉양을 잘하라고 여러 번 당부하셨어요. 건강은 하신지….”

시종 밝은 표정이던 사린 씨는 고향 이야기가 나오자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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