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치고 또 고쳐…세월을 덧입히다… 장두건화백 구순맞이 기념전

  • 입력 2007년 5월 1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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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년간 가필한 ‘세월’ 등 70여 점 전시

서울 마포구 공덕 로터리에 있는 한 빌딩. 크고 작은 회사가 즐비한 이곳에 장두건 화백이 20여 년간 작업해 온 스튜디오가 자리하고 있다. 올해 구순을 맞은 장 화백은 이 건물이 들어설 때부터 이곳에서 작업을 해 왔다. 도심 오피스 빌딩에 스튜디오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들어가 보면 널찍한 창문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이 실내를 환하게 비춰 준다.

장 화백은 15∼27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서울갤러리(02-2000-9736)에서 아흔을 기념하는 전시를 연다. 올해 그린 소품을 비롯해 평생 그려 온 정물 풍경 인물화 등 70여 점을 선보인다. 평생 화업을 조망하는 전시다. 스튜디오에는 전시를 위해 준비한 그림들로 빼곡하다. 벽 한쪽에는 장 화백이 젊은 시절 그린 누드 드로잉도 여러 점 걸려 있다. 그는 “자연광 아래에서만 작업을 하기 때문에 사시사철 햇빛이 잘 드는 이곳을 떠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전시작은 장 화백이 소장하고 있는 100여 점 중에서 골랐다. 장 화백은 그림을 ‘고치고 또 고치기’ 때문에 작품 수가 다른 작가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세월’이라는 대표작도 1977년에 그린 뒤 2002년까지 가필했다. 색동 한복을 입은 여성들의 매끄러운 맵시와 운율 넘치는 몸짓을 표현한 작품이다.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초곡동이 고향인 그는 “단오나 추석 때 한복 입은 여인들의 정경이 펼쳐지는 고향 풍경”이라며 “나이가 드니까 고향이 있는 곳에 뜻이 있더라”고 말했다.

세 여성에게서 봄 향기가 물씬 풍기는 ‘봄이 오면’, 닭이 새장에서 나오자마자 날개를 활짝 펴는 모습을 담은 ‘삶은 즐거워’ 등도 고치고 또 고친 작품이다. 장 화백은 작가 노트에 “작품을 할 때는 우연이 있을 수 없다. 파고들고 또 파고든다. 내 작품 세계가 찾는 이 없는 고독한 세계라면 그 또한 숙명으로 볼 것이다”고 썼다.

○ “사실상 내 생애 마지막 전시일 것”

장 화백은 한국 구상 미술의 거목으로 인물화와 풍경화에서 우리 미감이 가득한 사실주의 작품을 선보여 왔다. 그는 “자연에서 얻은 감동을 단순히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게 아니라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심상을 표현하려 했다”면서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자연주의자”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도 오전 10시경에 스튜디오로 ‘출근’해 자연광이 들어오지 않는 저녁 무렵이면 ‘퇴근’한다. 두 차례의 큰 수술로 기력이 예전만 못하지만 소품 위주의 작품 활동에 만년의 열정을 다하고 있다.

장 화백은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유학 가 그림 공부를 한 뒤 광복 이후 서울사대부중 미술 교사를 지냈다. 당시 1학년 담임을 맡았는데 제자 중에는 이건희(삼성그룹 회장) 군이 있었다. 이후 프랑스로 3년간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남관 권옥연 김흥수 화백과 어울렸다. 그는 “이응로가 프랑스 음식을 못 먹어 고생 많았다. 김흥수와 남관이 논쟁을 벌이면 정말 팽팽했다”고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장 화백은 “이번 전시는 사실상 내 생애 마지막일 것”이라면서 “스튜디오는 고향이나 다름없지만 붓질은 아직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에 설립될 포항시립미술관 내 장두건 기념관에 작품들을 기증할 계획이다.

허엽 기자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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