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가는 책의 향기]오에 겐자부로가 영감을 줄거야

  • 입력 2007년 5월 1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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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이영문 아주대 의대 교수(인문사회의학)

To:예술 공부에 입문하는 아들 재준에게

소외된 이들과의 아름다운 소통

오에 겐자부로가 영감을 줄거야

봄날이 그저 가고 있다. 네 엄마를 만났을 때가 1983년 봄, 라일락이 필락말락할 때니까 거의 사반세기가 지나가고 있구나. 우린 결혼을 했고 네가 제일 먼저 태어났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너의 머리맡에 내가 처음으로 놓아 둔 책이 무언지 기억하니. 구광본 시인의 ‘강’(민음사)이라는 시집이었단다. 그 시집의 시 중에 ‘빵 굽는 시인’이라는 시가 마음에 들었지. 먼 훗날 네가 빵을 구우면서 시를 쓰든 그림을 그리든 세상과 소통하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했단다. 신통하게도 너는 다섯 살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 다른 것은 몰라도 그림과 달리기를 무척 잘하던 네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구나.

이러구러 20년이 지나 이제 대학생이 될 너를 보며 그맘때쯤 내가 읽었던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문학동네)을 권한다. 세상과 소통하려는 유대인 소년 모모와 살아가기 위해 웃음을 팔아야 했던 로자 아줌마의 이야기는 지금도 생생해. 나는 재준이가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함께 소통하려는 노력을 했으면 하지. 예술은 바로 그 소외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오에 겐자부로의 예를 드는 것이 좋겠구나. 그 작가는 ‘나의 나무 아래서’(까치)를 비롯해 장애 아동을 대상으로 한 책을 여러 권 썼는데 이 모든 것은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자신의 아들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더구나. 그 책에서 오에 겐자부로는 아이들이 왜 학교에 가야 하는지, 정신지체 아들을 둔 가족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지. 또한 그 책에는 그의 부인 오에 유카리가 그린 아름다운 삽화가 있는데 재준이가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예술가가 되기를 바란다.

멀리 떠나가는 너를 보며 재준이도 이제 하나의 섬이 되어 간다는 생각을 한다. 일전에 지리산 종주를 함께 할 때 섬처럼 떠 있던 반야봉을 기억하니? 온몸이 녹아내릴 고통 속에서 바라본 지리산 구름바다에 고고하게 떠 있던 둥그스름한 봉우리 말이다. 장 그르니에의 ‘섬’(민음사)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아빠와 엄마를 맺어 준 책이기도 하고, 25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읽어 보는 참 아름다운 책이지. 세상의 모든 책이 시시하게 보이거나 사는 게 시큰둥할 때 아빠는 이 책을 사람들에게 권한단다. 어려우면서도 쉽고, 알 듯하면서도 모른다는 표현이 적절한 책이지. 특히 그 책의 ‘공(空)’과 ‘고양이 물루에 대한 명상’은 두고 두고 읽고 있지. 재준이가 사는 게 고달플 때, 한 번쯤 한두 페이지 읽어 가며 쉬기를 바라. 평생을 머리맡에 두고 읽을 몇 안 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재준아. 이 세상은 온통 모순으로 가득하지만 그 모든 것이 실타래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단다. 언제나 소통해야 한다는 명제를 잊지 말고 너 자신을 사랑하고 그 힘으로 남들을 포용하고 함께 살아가기를 바란다. 새삼 네가 하고 싶은 공부, 하게 된 것을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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