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진우]우리도 ‘미래’에 투표하고 싶다

  • 입력 2007년 5월 9일 03시 00분


코멘트
일반적으로 유권자는 회고적 투표와 전망적 투표를 동시에 한다. 과거의 업적과 실책에 대한 평가와 미래에 대한 기대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누구를 찍을지 결정한다.

지난 몇 달 동안 프랑스 대선 정국은 유난히 뜨거웠다. 전후 세대의 전면 등장, 최초의 여성 대통령 탄생 가능성, 선명한 좌우 이념의 대결에 힘입은 현상이었다.

니콜라 사르코지의 승리 요인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의 단절을 통한 회고적 투표 가능성 차단, 선명한 공약과 강력한 리더십의 부각에 힘입은 유권자의 전망적 투표 흡인이 그것이다.

시라크 대통령과의 단절을 꾀한 사르코지의 그간 행보는 시라크 집권기를 포함해 지난 25년간 프랑스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세계 7위에서 17위로 추락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활력을 잃어버린 프랑스 경제에 대한 책임 소재에서 벗어남으로써 회고적 투표에 의한 심판을 비켜가려는 전략이라 하겠다.

내무장관 시절 보여 준 사르코지의 결단력과 추진력은 반대파에는 가혹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비판의 소재를 제공했으나 지지층에는 강한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가진 인물로 각인되는 밑거름이 됐다. 또 사르코지는 강경한 이민정책, 35시간 근로제 개혁, 범죄에 대한 단호한 대처, 감세 정책 등 경쟁자인 사회당의 세골렌 루아얄 후보와 철저하게 구별되는 선명한 우파 어젠다를 제시함으로써 지지계층을 결집할 수 있었다.

결국 이번 프랑스 대선은 회고적 투표의 심판을 벗어난 사르코지와 지난 12년간 야당이었던 관계로 회고적 투표의 대상이 아닌 사회당의 루아얄 후보가 유권자의 전망적 투표를 겨냥해 비전과 정책으로 대결함으로써 프랑스 국민으로 하여금 선택다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 준 한판 선거전이었다.

국내로 시선을 돌리자면 한나라당의 경우 이명박 후보는 청계천 복원사업을 깔끔하게 해낸 업적을, 박근혜 후보는 한때 백척간두에 섰던 한나라당을 다시 일으켜 세운 공을 앞세우며 회고적 투표에 주로 승부를 걸고 있다.

여권의 후보들은 회고적 투표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다. 열린우리당에서의 탈당 러시가 이를 입증한다. 회고적 투표의 대상이 되고 싶지 않다면 이는 전망적 투표로 심판해 달라는 이야기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나는 아직 각 후보가 가진 미래의 청사진을 보지 못했다. 우리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진단과 처방도 알지 못한다. 당내 경선의 룰과 이합집산의 방법론을 두고 다투는 모습만 보일 따름이다. 유권자는 무엇으로 후보의 전망을 평가하고, 선호의 우선순위를 매길 것인가?

정책과 비전의 차별성이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이념의 스펙트럼에서 좌도 우도 아닌 중도가 가장 비옥한 표밭이며, 따라서 대선은 회색지대를 좀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한 싸움임을 후보들이 알기 때문인지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한국 정치는 대안의 선택이 아니라 또다시 연고와 이미지의 정치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다가올 시대는 과거에 비해 불확실성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세계화의 파고가 날로 높아지는가 하면, 주요 강대국의 관계 변화와 북핵 문제의 추이에 따라 동북아 정세의 불안정성이 증폭될지 모른다. 내부적으로는 양극화의 심화, 고령화의 진행으로 사회 경제적 기반이 흔들릴 소지가 있다.

주도면밀하게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할 현안이 산적했다. 이런 현안에 대해 뚜렷한 소신을 보여 주는 지도자의 정책 대결은 언제쯤 시작될까? 금년 12월 우리가 진정한 선택의 기회를 갖게 되기를 바랄 따름이다.

최진우 한양대 교수·유럽정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