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곤소곤 경제]누가 내 이자를 먹었을까

  • 입력 2007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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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지난해 취업에 성공한 효신(29) 씨는 한 푼 두 푼 알뜰하게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점심식사 때 선배들에게 얻어먹기는 기본, 매일매일 가계부를 쓰고 최대한 아끼며 생활했다. 회사에서 짠돌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녀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효신 씨가 저축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 때부터 눈여겨봐 둔 자동차 때문이었다. 자동차 관련 잡지, 인터넷에 올라온 사용자 수기를 꼼꼼히 읽었고, 자동차 대리점에서 마련한 시승 행사에도 참여했다.

그런데 차 가격인 2000만 원을 거의 모았을 무렵. 둘도 없이 가까운 친구가 찾아와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효신아, 나 급하게 돈을 써야 하는데 돈 좀 빌려줄 수 있니?”

“얼마나?”

“2000만 원. 1년만 빌려주면 원금에다 연 10% 이자를 더해서 돌려줄게.”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도 큰돈을 빌려달라는 말에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어려운 일인 줄 알아. 차용증도 써 줄게. 꼭 부탁한다.”

친구의 간곡한 부탁에 효신은 돈을 빌려주기로 했다.

‘그래. 정말 믿을 수 있는 친구지. 약속을 어길 리가 없어. 얼마나 급하면 나한테 이런 부탁까지 했을까.’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또 가만히 따져보니 차 구입을 1년만 연기하면 우정도 지키고 200만 원(2000만 원×10%)도 생겨 차를 살 때 괜찮은 옵션도 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로부터 1년은 더디게 흘렀다. 친구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이자까지 얹어 2200만 원을 돌려주었다.

효신은 약속을 지켜준 친구가 고마웠고, 무엇보다 이제 차를 살 수 있어 너무도 기뻤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자동차 대리점에 달려가 보니 1년 새 차 가격이 2100만 원으로 올라 있었다.

‘이럴 수가! 그새 자동차 가격이 5%나 오르다니….’

결국 차를 사고 손에 남은 돈은 100만 원. 친구에게서 이자 200만 원(원금의 10%)을 받았지만 100만 원(원금의 5%)은 자동차 값에 포함돼, 실질적 이득은 100만 원에 그쳤다.

■이해

친구가 제시한 이자율은 연 10%다.

하지만 이 중 5%는 자동차 인상분에 포함돼 손에 남은 이자는 5%였다.

경제학에서는 효신이 명시적으로 약속 받은 이자율 10%를 명목 이자율(명목 금리), 실제로 손에 쥔 이자율 5%를 실질 이자율(실질 금리)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명목 이자율과 실질 이자율의 차이 5%는 어디로 갔을까? 자동차 가격처럼 재화와 서비스 가격의 인상에 포함된다.

이처럼 전반적인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 인상률을 인플레이션율이라고 부른다.

즉, 지금까지의 설명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

명목 이자율(10%)=실질 이자율(5%)+인플레이션율(5%)

만약 은행에서 고시한 이자율이 연 5%이고, 그해의 인플레이션율이 5%라면 실질 이자율은 얼마일까? 0%다. 이자를 받아도 전반적인 물건 값이 이자만큼 올라 남는 게 없다는 뜻이다.

한 나라의 부(富)를 측정해 나타내는 국내총생산(GDP)을 구할 때도 명목과 실질의 개념이 활용된다.

예를 들어 5년간 A나라의 명목 GDP가 두 배 늘어났다고 하자. 이 경우 A나라의 국민은 그만큼 풍요로워졌을까.

물론 아니다. 명목 GDP란 한 나라 안에서 생산된 각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량에다 각각의 가격을 곱한 뒤 합산해 구한다. 따라서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량은 같더라도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이 두 배로 올랐다면 명목 GDP도 두 배 증가할 수 있다.

따라서 명목 GDP의 증가에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부풀려진 부분을 없앤 것이 실질 GDP이다. 일정 기간 실질 GDP가 두 배 증가했다면 이는 국민이 사용할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량이 그만큼 증가했다는 뜻이다.

겉모습은 한 사람의 명목 가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위기상황처럼 급박할 때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 이것이 바로 실질 가치가 아닐까.

생각해 보자. 나의 명목 가치는 실질 가치보다 지나치게 부풀려진 것은 아닌지.

박 형 준 성신여대 사회교육과 교수·경제교육 전공

정리=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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