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경란]버릴 것 없는 어머니의 물건

  • 입력 2007년 5월 7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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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박기호 씨의 전시를 보러 갔다가 함께 간 Y 선생을 통해 중국 작가 쑹둥(宋冬)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사라지는 것을 찾는 일,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 바로 두 예술가의 공통점이었거든요. 쑹둥은 지난해 광주비엔날레에서 ‘버릴 것 없는’이라는 설치작품으로 대상을 수상한 적이 있어요.

절약과 보관의 생활습관

이 작품은 작가의 어머니가 30년 동안 모아 온 물건, 이를테면 신발이라든가 이불 옷 혹은 냄비 같은 그릇이며 심지어는 비닐봉지 같은 것을 전시한 방대한 작품이에요. 어려웠던 시절을 겪은 세대가 갖고 있는 절약과 보관의 일상적인 생활습관을 작품의 소재로 활용했지만 무엇보다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건 작품이 모두 ‘어머니’가 쓰던 물건이라는 점이었지요(전시실을 나와서도 그 ‘버릴 것 없는’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어요).

며칠 전 시장 입구에서 우연히 엄마를 본 적이 있어요. 예나 지금이나 거리에서 가족을 보게 될 때면 왜 저도 모르게 엉거주춤 몸을 숨기게 되는지 모르겠어요. 천식과 알레르기 때문에 커다란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깊숙이 눌러 쓴 엄마는 무거운 장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은 채 헉헉 숨을 고르고 있었어요.

아래위로 옷을 빼입고 외출 중이던 저는 ‘엄마!’라고 소리치며 얼른 달려가거나 장바구니를 집까지 대신 들어 줄 수도 있었지만 오후의 햇살 속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날 엄마의 검버섯 핀 얼굴과 그 얼굴에서 드러날 궁핍함 같은 것, 거울처럼 똑같을 나의 얼굴이 두려웠을까요. 저는 여전히 저쪽에서 우두커니 서 있을 따름이었지요.

전시를 보고 온 날, 안방 장롱 서랍을 하나씩 열어 보았어요. 청춘 시절에 찍은 부모님의 흑백 사진, 제가 어렸을 적에 함께 모았을 우표 책, 산업근로자로 사막을 오가던 시절에 아버지가 세 딸에게 사다 준 플라스틱 입체 카메라와 옷에 걸 수 있게 된 회중시계…. 아마도 그런 사물들로 엄마, 아버지에 관한 ‘버릴 것 없는’ 마음의 전시를 해 볼 수 있겠지요.

그러나 저는 가만히 옥상으로 올라갔답니다. 거기에는 항아리가 있잖아요.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세 딸과 아버지, 우리 가족이 아버지가 사막에 계셨던 10년 동안 주고받은 편지가 김장김치처럼 비닐봉지에 차곡차곡 쟁여져 있는 항아리. 저는 그 봉인된 항아리로 나의 부모님, 기댈 어깨를 내주는 아버지와 언제나 영원한 가슴으로 품어 줄 어머니를 기억하게 되지 않을까요.

어제 아버지, 엄마와 두 살짜리 조카를 안고 15년 만에 새 냉장고를 사러 갔을 땐 저도 참 행복했어요. 엄마가 그렇게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는 모습을 본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거든요.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시는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지만, 오늘은 안현미라는 젊은 시인의 ‘우리 엄마 통장 속에는 까치가 산다’라는 제목의 시 한 편 읽어 드릴게요.

김장독 속에 쌓여 있는 추억

“귀퉁이가 닳고 닳은 통장/지출된 숫자 같은 앙상한 나뭇가지 하나 없어도/우리 엄마 통장 속에는 까치가 산다/고향 집 감나무 꼭대기/까치밥같이 붉은 도장밥 먹으며/우리 엄마 통장 속에는 까치가 산다/상처도 밥이고/가난도 밥이고/눈물도 밥이고/아픔도 열리면/아픔도 열매란다, 얘야/까치발을 딛고 나 엄마를 따먹는다/내 몸 속에는 까치밥처럼 눈물겨운 엄마가 산다.”

천천히 올 게 분명하지만 틀림없이 지금보다 더 좋은 시절이 올 거예요. 오늘은 5월의 햇살처럼 뜨겁고, 까치밥처럼 붉은 꽃 한 송이 가슴에 달아 드릴게요. 카네이션 꽃말은요, 존경과 사랑이래요, 엄마 엄마, 우리 엄마.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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