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내비게이션’ 만들어 생명 읽는다

  • 입력 2007년 5월 4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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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생물학’은 몸을 이루는 수많은 구성요소를 총체적으로 바라보자는 관점에서 출발했다. 그동안 개별적으로 진행해 온 유전자와 단백질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이들의 상호작용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주요 관심사다.
‘시스템생물학’은 몸을 이루는 수많은 구성요소를 총체적으로 바라보자는 관점에서 출발했다. 그동안 개별적으로 진행해 온 유전자와 단백질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이들의 상호작용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주요 관심사다.
● 유전자-단백질 개별연구론 질병치료 한계

‘유전자 하나로 생명을 읽는다.’

최근 생물학이 내던진 중요한 목표 중 하나다.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생물학은 물론 사회학과 공학 이론을 활용해야 한다. 호르몬이 몸 안에서 작용하는 경로를 마치 내비게이션 지도처럼 볼 수 있다면? 생물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해석하는 생물학, 곧 ‘시스템생물학’이 최근 관심을 끌고 있다.

인간게놈프로젝트(HGP) 연구로 밝혀진 사람의 유전자(DNA)는 약 3만 개. 그러나 최근까지도 이들 유전자끼리 서로 어떤 작용을 하는지 밝혀진 것은 별로 없다. 사람 몸을 이루는 수많은 단백질의 상호작용을 밝히는 연구 역시 아직은 초보 단계.

광주과학기술원 생명과학과 김도한 교수는 “사람 몸은 수많은 DNA와 RNA, 단백질이 관계를 맺는 거대한 시스템”이라며 “그간의 게놈 연구와 프로테옴(단백질체) 연구에서 얻은 결과를 통합한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시스템생물학은 이처럼 유전자나 단백질의 성질을 개별적으로 아는 차원에서는 질병 치료에 완벽하게 접근하기 어렵다는 시각에서 출발했다.

실제로 미국 머크사가 1995년 개발한 관절염약 ‘바이옥스(Vioxx)’를 회수한 사건은 ‘시스템적 접근’이 필요한 단적인 사례로 꼽힌다. 원래 이 약은 위막을 보호하는 효소(COX-1)와 염증을 일으키는 효소(COX-2)에 모두 작용해 장기 복용하면 위장 장애를 일으키는 기존 약을 대체하기 위해 개발됐다.

당시 머크의 연구팀은 COX-1 대신 COX-2만 골라 공격하는 물질을 만들기로 했다. 문제는 COX-2를 억제하면 혈액이 잘 응고돼 혈관을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 부작용이 거론되자 결국 2004년 전량 회수 결정을 내려야 했다.

● 생명현상을 공학의 전자회로 모델로 분석

생체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현상을 살피기 위해 과학자들은 ‘네트워크’에서 영감을 얻었다. 사람 간의 관계나 인터넷망처럼 몸의 각 요소도 거대한 망을 이룬다고 본 것이다.

이스라엘 와이즈만 과학연구소의 유리 아론 박사는 2002년 유전자나 단백질을 포함해 몸을 구성하는 각 부분이 복잡한 네트워크를 이룬다는 사실을 규명해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유전자나 단백질도 서로 밀접한 정도에 따라 ‘촌수 매기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전자회로 등 공학에서 흔히 활용하는 ‘피드백(되먹임)’ 모델을 활용하기도 한다. 대장균이 대표적인 사례다. 세포에 달린 추진기관을 이용해 움직이는 대장균은 영양분의 농도가 떨어지면 농도가 더 높은 쪽으로 헤엄쳐 가는 성질이 있다.

김 교수는 “영양분이 늘어나면 그에 맞게 반응하다 영양분의 농도가 일정해지면 그 반응을 억제하는 음의 되먹임을 보여 주는 전형적인 경우”라고 설명한다.

● 핵심 유전정보 추출하려면 연구자들 협업 필수

수백∼수만 개의 정보를 비교 분석하는 일인 만큼 이들 연구에는 컴퓨터 등 정보기술이 꼭 필요하다. 개별 연구를 하는 연구자와 이를 통합하는 연구자들의 국제적인 협업도 필수.

이 같은 대규모의 분석 방식은 큰 성과로 이어진다. 김 교수는 지난해 심장 유전자의 상호작용을 이해할 수 있는 ‘심장 세포 유전자 시스템 지도’를 세계 최초로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김 교수는 이 지도를 이용해 심장 수축에 영향을 미치는 57개의 새로운 유전자군을 발견했다.

한국과학기술원 생명화학공학과 이상엽 교수도 최근 시스템생물학 연구를 통해 지금까지 보고된 균주 가운데 가장 많은 아미노산(발린)을 생산하는 미생물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대장균의 게놈을 조작한 뒤 DNA칩과 컴퓨터를 활용해 전체 유전자 중 아미노산 생산과 관련된 유전자를 차례로 발현시켜 최적의 유전자와 최적의 대사조건을 찾아낸 것이다.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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