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새 핵심요직 3명 물갈이… 북한 권부에 무슨 일이

  • 입력 2007년 5월 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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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과 신임 총참모장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왼쪽)이 최근 임명한 김격식 군총참모장과 함께 조선인민군 제1637부대를 시찰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김정일과 신임 총참모장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왼쪽)이 최근 임명한 김격식 군총참모장과 함께 조선인민군 제1637부대를 시찰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북한 권부에 새 바람이 일고 있다.

지난달 한 달 동안 대남정책을 총괄하는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에 김양건(69) 국방위원회 참사, 군사작전 계획을 통솔하는 인민군 총참모장에 제2군단장 출신 김격식(67) 대장, 경제 분야를 진두지휘하는 내각총리에 김영일(63) 육해운상이 각각 임명됐다.

이 자리들은 하나같이 북한 권부 내 요직 중의 요직이고, 임명된 사람들도 60대로 북한 권부 내에선 젊은 편. 개편 전 북한의 주요 행사 주석단 참석자를 바탕으로 분석한 권력서열 20위권 인사들의 평균 나이는 76세였다.

▽심상치 않은 북한 권부=김양건 참사의 통전부장 임명은 2006년 8월 임동옥 부장 사망 이후 공석이던 대남총책 자리를 채워 넣은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 부장은 이번 인사에서 통전부장 외에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 감투도 썼다.

노동당의 통일문제 및 남북대화 관련 방침을 대변해 온 조평통 위원장은 1991년 허담 전 외무상 사망 이후 무려 16년 동안 공석이었고, 아태평화위원장도 2003년 김용순 대남담당비서 사망 후 4년 만의 승진 인사다. 한국으로 치면 국가정보원장과 통일부 장관,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자리를 한 사람이 맡은 셈.

김연철 고려대 연구교수는 “북한의 대남 조직이 이제는 완전히 정비됐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홍익표 통일부 정책보좌관도 “하반기 대남 관계가 속도를 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뒷받침해 주는 인사”라고 설명했다.

인사 태풍의 조짐은 군사 분야에서도 마찬가지.

2005년 10월 연형묵 전 정무원 총리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자리에 김영춘(71) 총참모장이 임명되면서 김격식 대장이 총참모장 자리를 승계했다. 또한 북한에서 사실상 2인자 역할을 했던 조명록(79·차수)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위독한 상태여서 사망할 경우 추가적인 인사 요인이 된다.

일선 군단장급에는 이미 인사태풍이 불어 닥쳤다. 세종연구소 정성장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각 군단 사령관을 40, 50대로 교체하는 인사를 단행했으며, 각 군단 이하 간부들도 젊은 세대를 임명해 여단급 지휘관의 경우 거의 30대로 바뀌는 등 급격한 세대교체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1월 백남순 전 외무상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외교 사령탑에 누가 오를지도 관심사. 현재까지는 강석주(68) 제1부상이 유력해 보인다.



▽친중(親中)파의 퇴조와 실력 본위의 인사=세대교체의 조짐과 함께 눈에 띄는 것이 친중파의 퇴조 분위기. 그 중심에는 박봉주 전 내각총리가 있다.

박 전 총리의 경질 사유는 전반적인 경제정책의 실패와 800만 달러 상당의 비료 구입비를 유류 구입에 전용했기 때문으로 알려졌지만 일부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중국의 대북 영향력 확대를 우려한 상징적인 인사라는 분석도 나온다.

박 전 총리는 2005년 3월 중국을 방문해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와 돈독한 관계를 맺었고, 지난해 1월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도 수행했다.

김 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 당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의 퇴조도 같은 맥락. 중국은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북한의 3대 세습 반대 의사를 공공연히 밝히며 대안으로 집단지도체제를 제시하는 한편 잠재적인 지도자 중 하나로 장 부부장을 거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장 부부장은 급속히 고립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대북 전문가는 “권력다툼을 벌였다는 이유로 좌천됐던 장 부부장이 복권되기는 했지만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김 위원장의 감시하에 있어 아무도 그를 만나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외국 도주설이 나오고 있는 정하철(74) 선전선동담당비서도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이나 중국 관련 행사에 빠짐없이 동행해 온 친중파였다.

이번 인사의 또 하나의 특징은 실력 본위인 점을 들 수 있다.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에 단 한번도 끼어 보지 못했던 무명의 김영일 육해운상이 내각총리로 전격 기용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김 신임 총리는 해운 대학을 졸업하고 육해운성 말단 지도원에서 출발한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란 점에서 정치적 배경이나 학벌보다는 실무능력을 높이 사 총리로 파격 기용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하반기 대대적인 개혁의 신호탄?=일련의 인사를 통해 김 위원장은 핵실험 감행에 따른 강성대국 건설의 자부심을 토대로 일체의 파벌행위나 권력에 도전하는 행위를 용납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현철해 박재경 이명수 등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 최다 수행 3인방은 물론 김양건 통전부장, 김영일 신임 내각총리 모두 온건함과 충성도를 겸비한 사람들”이라며 “김 위원장 식 안심(安心)인사를 한 셈”이라고 풀이했다.

북한이 경제 분야에서의 완전한 당정 분리를 통해 철저히 실적 위주의 경제개혁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같은 분석의 근거는 김영일 신임 내각총리가 노동당 중앙위원이 아닌 최초의 순수 기술관료 출신 총리라는 점.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 식 당정분리의 신호탄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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