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 인권유린”…‘이슬람의 분노’ 심상치 않다

  • 입력 2006년 2월 1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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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권과 서방 간의 반(反)문명적인 ‘문명의 충돌’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양상이다. 더욱이 파키스탄에서 반서방 시위로 한국기업에 첫 피해가 발생하는 등 한국도 이제 문명 충돌의 안전지대가 아님을 보여 준다.》

▼美軍 이라크포로학대 또 폭로…만평파문-英軍구타이은 악재▼

마호메트 풍자 만평 파문에 이은 영국군의 이라크 청소년 집단구타 사건 등으로 확산돼 온 이슬람권의 분노에 다시 기름을 붓는 사진들이 15일 공개됐다.

호주 공영방송인 SBS TV는 이날 ‘데이트라인’ 프로그램을 통해 바그다드의 아부그라이브 포로수용소에서 피투성이가 되거나 발가벗겨진 채 쓰러져 있는 포로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비디오 촬영 장면을 내보냈다.

이번 방영분은 2004년 중동에서 격렬한 반미시위를 촉발시킨 포로 학대 사진의 추가분.

분뇨로 얼굴과 몸이 더럽혀진 포로가 있는가 하면 피범벅이 된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포로, 군용견의 위협에 떨고 있거나 머리에 봉지가 덮어씌워진 수감자 등 2004년 것보다 훨씬 잔혹한 장면이 포함돼 있다.

특히 한 수감자는 수갑을 찬 채 머리를 철문에 계속 부딪쳐 선혈이 낭자한 사진 등이 촬영돼 여러 번 잔혹 행위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SBS는 “정신장애를 겪고 있는 이 수감자는 저항하는 방법을 실험해 보겠다는 미군들의 ‘노리개’가 됐다”고 보도했다.

이 사진들이 즉각 아랍 위성방송을 통해 재방영되고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번져 나가면서 미군에 대한 비난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CNN도 곧 이들 사진을 전 세계에 주요 뉴스로 내보냈다.

한편 지난해 잔혹 행위를 한 병사들을 재판에 넘겨 이미 선고를 내렸고 관련자 문책까지 끝낸 미군 당국은 추가 폭로에 당혹해하면서도 “새로울 것 없는 사진들”이라며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피습당한 삼미대우 “현지 경쟁업체가 시위대 이용”▼

한국기업 삼미대우가 시위대의 공격을 받은 파키스탄에선 16일에도 마호메트 만평 항의시위가 계속됐다.

이날 항구도시 카라치에는 5만여 명이 모여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예언자 마호메트의 영광을 지켜야 한다”고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파키스탄에선 이미 지난 이틀 동안 시위로 최소 5명이 숨졌다.

한편 파키스탄 한국업체 삼미대우가 15일 시위대의 공격을 받은 것은 현지 경쟁업체들의 질시가 작용한 때문이어서 이슬람권에 진출해 있는 한국기업들의 각별한 경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제병(李濟柄·59) 삼미대우 법인장은 “시위에 대비해 파키스탄 군과 경찰에 보호를 요청해 수십 명이 파견돼 경비를 서고 있었지만 중과부적이었다”며 “폭도로 변하기 쉬운 시위대의 우발성을 현지 소규모 경쟁업체들이 교묘히 이용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삼미대우의 피해액은 최소 5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관타나모수용소 무슬림인권유린”UN인권보고서, 폐쇄촉구▼

미국 정부는 쿠바 관타나모의 수용소를 즉각 폐쇄해야 하고 500여 명의 수감자를 정식 재판에 회부하거나 석방해야 한다는 유엔 인권보고서가 16일 발표됐다.

유엔 인권위원회의 의뢰로 인권전문가 5명이 작성한 54쪽짜리 보고서는 미국이 대테러전쟁 수감자의 육체적 정신적 인권을 위반했으며 일부의 경우는 고문과 다름없는 인권 유린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보고서는 또 수감자를 이동시키며 과도한 폭력을 행사하거나 단식 항의하는 수감자에 대해 강제로 음식을 먹이는 사례 등을 소개했다. 특히 음식을 강제로 먹이는 과정에 의사들이 참여했다며 이는 의료윤리 위반에 해당한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미 국방부가 승인한 모든 특별 심문기술은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이 보고서는 “미 행정부가 수감자의 판사이자 검사이며 변호사 역할까지 맡는 등 공정한 재판을 보장받을 권리를 심각하게 위반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 행정부는 이번 주 초 초안이 유출되자 “작성자들은 수용소를 방문하지도 않았다”며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었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전문가들은 2002년부터 관타나모 수용소 방문을 위한 협상을 미국과 벌여 왔으나 수감자들과 자유롭게 대화할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자 방문을 취소했다. 전문가들은 대신 미 행정부의 각종 문서와 과거 수감됐던 사람들의 인터뷰를 토대로 보고서를 작성했다.

관타나모 기지는 쿠바의 영토이지만 1903년 미국이 영구 임대 계약을 체결해 해군기지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 국내법이 적용되지 않아 내부 수용소에서 가혹 행위 등이 성행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으며 수감자 대부분이 이슬람 신자이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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