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대표적 親日소설 ‘야국초’ 새롭게 해석

  • 입력 2006년 2월 1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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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일제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한국인들로 하여금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해석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하는 것이다.”(‘해방전후사의 재인식’ 중)

“‘비(非)민족주의적 반(反)식민주의’는 민족주의가 범한 자(自)종족중심주의를 피해가면서도 탈식민주의의 주체 해체를 극복하는 방안이다.”(‘탈식민주의를 넘어서’ 중)

지난주 출간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책세상)과 ‘탈식민주의를 넘어서’(소명출판)는 일제강점기 문학작품에 대해 민족주의적 해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그러나 ‘재인식’이 “친일과 반일의 이분법이 문학작품의 다층적 해석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넘어서’는 “친일 협력을 민족주의가 아닌 다른 관점에서 비판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전자가 친일파라는 특정인들에게만 겨눠진 칼날을 우리 내면으로 돌리고자 한다면, 후자는 그 칼날을 민족주의가 아닌 보편주의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민족주의 극복’이라는 새로운 지평 내에서 떠오르는 이런 관점의 차이는 구체적 작품에 대한 해석을 통해 뚜렷이 읽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최정희의 ‘야국초’(1943년)에 대한 두 책의 분석은 ‘탈민족주의’와 ‘비민족주의적 반식민주의’가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를 분명히 드러내 준다.

‘야국초’는 유부남과의 혼외정사로 아들을 낳은 미혼모가 열 살 된 아들을 데리고 일본군 지원병 훈련소를 방문하고 돌아오면서 아들을 천황의 병사로 보낼 결심을 한다는 내용. 친일소설의 전형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최경희 시카고대 교수는 ‘재인식’에 실린 ‘친일문학의 또 다른 층위’라는 글에서 ‘야국초’가 조선의 봉건적 가부장문화에 대한 원한 어린 비판으로 읽힐 수 있다고 분석한다. 남성중심주의에 의해 희생된 여주인공이 조선에서는 사생아인 아들에게 합법적 지위를 부여하기 위해 아들을 일본의 신민(臣民)으로 만드는 것에는 ‘조선 남성들의 위선과 허약성에 대한 가일층 신랄한 비판이 담겨 있다’는 것.

또한 작품 초반에서 자신의 명예를 위해 낙태를 강요하는 ‘식민지의 아버지’와 헤어지고 아들을 낳아 키운 여인은 작품 후반에 ‘제국의 아버지’(천황)를 위해 아들을 사지(死地)로 내모는 역설적 상황에 처한다. 작가가 이런 역설적 상황의 비극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음은 아들을 군대에 보내는 것을 ‘제 자신과 당신(조선인 아버지)에 대한 복수’로 표현한 것에서 찾아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서영인 경북대 강사는 ‘넘어서’에 실린 ‘순응적 여성성과 국가주의’라는 글에서 최정희의 작품들이 “국가주의의 강압적 이데올로기에 순응한 결과인 동시에 결핍된 가부장을 욕망하는 순응적 여성성의 발로”라고 비판한다. ‘야국초’에서 결핍된 가부장의 대체물로서 군국주의적 국가를 받아들인 것은 여성의 독립적 주체성을 확보하는 데 실패한 반여성주의적 작품이라는 비판이다.

또 작가가 제시한 ‘군국주의적 모성’은 자식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는 점에서 모성의 말살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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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

“일제의 식민지배에 저항한 민족주의의 관점에서 식민주의에

부화뇌동한 작가와 작품에 대해 엄정한 비판이 가해질 때 역사

적 교훈이 확립될 수 있다.”

:탈민족주의:

“식민지의 상황을 지배와 피지배, 억압과 저항, 가해와 피해의 이분법으로 재단하는 민족주의적 관점이 오히려 식민지의 복잡다단한 상황을 올바로 인식하고 극복방안을 모색하는 데 방해가 된다.”

:탈식민주의:

“식민지배로 인해 내면화된 ‘나(주체)와 너(타자)의 이분법으

로 세상을 바라보는 자종족중심주의’를 벗어나는 것이 인적 청

산보다 더 중요한 식민주의 청산이다.”

:비민족주의적 반식민주의:

“민족주의적 관점이 아니더라도 식민주의의 문제점과 친일 협

력의 문제를 다각적으로 비판할 수 있다. 탈식민주의는 자칫

식민주의의 폭력을 용인하고 연장하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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