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총 색깔이 바뀐다…기업지분 5% 이상 보유 펀드운용사 급증

  • 입력 2006년 2월 1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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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넥센타이어와 인지컨트롤스를 시작으로 올해 주주총회 시즌의 막이 올랐다.

올해는 시민단체인 참여연대가 주요 대기업의 주총 불참을 선언해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며 몸싸움과 삿대질이 오가던 주총 풍경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신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주주가치 제고’를 내세우는 점이 눈에 띈다.

펀드의 대중화로 기관투자가가 지분 5% 이상을 가진 기업이 크게 늘었다. 이에 따라 종전에는 비공식적인 통로로 높은 배당을 요구하던 기관들이 기업의 장기적 가치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해 투자 목적을 ‘경영 참가’라고 밝힌 외국인투자가들이 주총에서 어떤 목소리를 낼지도 주목된다.

○기관투자가 목소리 커져

한국투자신탁운용은 최근 투자기업 120개사에 영업현황과 올해 사업계획, 배당정책, 자사주 매입 등 주주 가치를 올리는 정책을 펼 것인지를 묻는 질의서를 보냈다.

한국투자신탁운용 김상백 주식운용본부장은 “예전에는 특별히 사안이 있는 기업에만 질의서를 보냈다”며 “올해는 펀드 규모가 커지고 지분이 확대돼 지분을 1% 이상 갖고 있는 기업에 모두 보냈으며 답변과 주총 안건을 받아 본 뒤 구체적인 행동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펀드 자금의 30%가량이 몰린 미래에셋도 내부 논의를 거쳐 배당이 터무니없이 낮다거나 출석률이 떨어지는 이사를 재선임하려는 기업들의 주총에 적극 참가하기로 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손동식 주식운용본부장은 “이제 참여연대 등에서 요구해 온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은 어느 정도 달성됐다”며 “앞으로 주총에서는 투자자의 이익을 어느 정도 확보하느냐가 최대 이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움직임은 다른 기관투자가에게도 확산될 조짐이다.

증권선물거래소 조사 결과 기관투자가가 5% 이상 지분을 갖고 있는 상장회사는 지난해보다 61.08% 늘었다. 특히 자산운용사가 5% 이상 지분을 가진 건수는 거래소시장에서 172.09%, 코스닥시장에서 132.14% 증가했다.

랜드마크자산운용 이종우 마케팅본부장은 “간접투자 문화가 정착되면서 증권 관련 산업의 수준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시점”이라고 평가했다.

○기업들도 ‘방문 설명’ 나서

기관의 힘이 세지자 기업들도 기관투자가 ‘관리’에 들어갔다.

지금까지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를 모아 놓고 대규모 기업설명회(IR)를 하거나 애널리스트가 기업을 탐방하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요즘은 기업 IR 담당자들이 특별한 이슈가 없어도 개별 투신사나 자산운용사를 찾아 ‘방문 IR’를 하는 곳이 늘고 있다.

SK텔레콤 고려개발 하나로텔레콤 등이 ‘방문 IR’를 했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방문 IR가 일반화돼 있다.

SK텔레콤 IR팀 박태건 과장은 “기관투자가를 찾아가 정보를 제공하고 이들의 반응을 경영진에 신속하게 전달하니 회사 의사결정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도 올해는 조용할 듯

매년 참여연대와 대결하면서 주총 시즌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던 삼성전자는 올해는 조용히 주총을 치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임기 만료된 이건희 회장, 윤종용 부회장, 이윤우 부회장, 최도석 사장을 등기이사로 재선임하고 사외이사를 새로 뽑을 예정이다.

기아자동차도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과 정의선 기아차 사장을 등기이사로 재선임한다.

하지만 ‘결전’을 앞두고 있는 대기업도 있다.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 연합으로부터 경영권 참여 요구를 받고 있는 KT&G가 대표적.

14일 이사회를 연 뒤 다음 달 주총을 열 예정인 KT&G는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열고 아이칸 씨 측이 추천한 사외이사 3명의 후보 자격을 심사 중이다.

이들 후보가 추천위원회를 통과하더라도 주총에서 표 대결을 해야 사외이사 선임 여부가 결정된다.

KT&G 곽영균 사장은 ‘지지표’를 모으기 위해 15일 뉴욕 홍콩 런던 등지를 돌며 해외 IR에 나설 예정이다.

KT&G 말고도 지난해 외국인이 ‘경영 참여’ 목적으로 주식을 5% 이상 보유한 상장기업이 109개사나 된다.

이들 기업도 이번 주총에서 경영 참여 요구를 받을 가능성이 있어 우호세력 모으기에 나서고 있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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