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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오명철]‘위대한 사기꾼’ 백남준과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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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오명철]‘위대한 사기꾼’ 백남준과의 추억

입력 2006-02-09 03:03수정 2009-10-08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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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낳은 위대한 예술가인 백남준이 74세를 일기로 세상과 작별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와의 여러 차례 만남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그처럼 기발하고 자유로운 예술 혼을 갖고 있는 인물을 가까이서 지켜본 것은 기자로서의 보람이자 행운이다.

특히 잊을 수 없는 것은 2000년 10월 구겐하임 회고전을 앞둔 그를 뉴욕 소호 스튜디오에서 만난 일이다. 1996년 3월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져 행동이 자유롭지 못했던 그는 대뜸 “요즘 하루 100m씩 걷는다”고 자랑했다. 저녁 식사 후에 지팡이를 짚고 50m를 걷고, 밤에 혼자 힘으로 화장실에 두 번 다녀오니까 또 50m가 된다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그는 “몸이 불편해서 그런지 머리는 오히려 더 잘 돌아가 아이디어가 샘처럼 솟아난다. 80세가 되는 2012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커다란 쇼를 한 뒤에야 죽어도 죽겠다”고 다짐했다. 10년은 더 살겠다는 그 약속이 지켜질 것으로 믿었기에 나는 그의 죽음을 돌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인터뷰 기사에는 싣지 않았으나 당시 그는 뉴욕 활동 초기에 겪은 마음고생을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미국 언론이 관심을 갖지 않아 로봇을 만들어 거리를 돌아다니게 했더니 뉴욕타임스에 났어. 그 뒤 몇 번 재미를 봤는데 또 시들해져. 그래서 로봇을 차로 깔아뭉갰더니 대서특필되더라고…”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그는 “뉴욕 같은 1급 예술도시에서는 누가 뭘 조금 더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남이 하지 않는 뭔가 색다른 것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류가 되려면 ‘More or Less’가 아니라 ‘Something Special’한 것을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사실 콧대 높은 서양인들이 동양의 변방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섣부른 관심을 표명할 이유는 없었다. 그가 1960년대 독일과 미국에서 파격 퍼포먼스를 벌였던 것은 현지 문화 예술계에 자신을 알리기 위한 계산된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그의 관심 영역이 행위음악에서 퍼포먼스, 비디오에서 레이저 아트로 옮아간 것도 ‘Something Special’에 대한 추구이자 작가로서의 ‘생존전략’이었을 것이다. 그가 재미 화가 강익중에게 했다는 말은 그런 의미에서 더욱 함축적이다. “작품을 싸게 팔고, 개막식 파티를 많이 찾아다니고, 여행을 많이 다니되 작품과 함께 다니라”고 당부했다는 것이다. ‘정상의 한국인’이었으나 세계의 무대에서 그는 여전히 고독했고, 끊임없이 제작비를 마련해야 했던 것이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미국에서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화장된 그의 유해가 한국 독일 미국에 분산 안치되는 이유다. 1993년 독일 국적으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뉴욕은 그를 20세기 가장 위대한 작가의 한 사람으로 대접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인의 원형질을 끝까지 간직했다. 열여덟 살에 한국을 떠났지만 모국에 대한 수구초심(首丘初心)이 그의 작품 곳곳에 배어 있고 1930, 40년대 서울 사람들의 말투와 억양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의 작품 도처에 한국의 무속이 내재해 있다는 점에서 그는 20세기 ‘디지털 무당’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구사하는 외국어는 유창하지는 않았으나 당당했다. 언젠가 “내가 무명일 때는 내 영어를 못 알아듣는 것 같더니 유명해진 후에는 영어로 무슨 말을 해도 그들이 다 알아들어 주더라”고 말할 정도로 자신의 성취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존 케이지가 “내일 당장 죽는다면 백남준의 재담을 듣지 못하는 것이 제일 서글플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의 입담은 재치가 넘쳤다. 1984년 그가 30여년 만에 고국에 돌아와 기자들에게 한 첫 일성도 “예술은 사기”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단서는 있었다. “사기라도, 고등사기를 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설픈 사기는 결코 대중을 속일 수도, 감동을 줄 수도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하늘나라에서도 ‘고등사기’를 궁리하고 있을 그가 그립다.

오명철 편집국 부국장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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