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 이젠 맛보고 산다

  • 입력 2006년 2월 7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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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이은주(37·여·서울 강남구 신사동) 씨는 최근 인터넷으로 책 10권을 샀다. 모두 인터넷으로 책 본문을 검색해본 뒤 고른 책들이다. 이 씨는 “예전엔 인터넷으로 표지와 서평만 보고는 실제 문장이 어떤지, 내용이 충실한지 가늠할 수가 없어 인터넷 구매를 꺼렸는데 요즘은 본문 검색 기능을 이용하니까 서점에 들러 책을 직접 훑어보는 것 같은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화장품 샘플 써보듯, 영화 예고편 보듯, 책도 이제 프리뷰(preview)시대다. 책 구매자 5명 중 1명은 인터넷으로 책을 사는 온라인 시대에 ‘맛보기’가 책 구매의 필수요소가 되고 있다.

지난해 말 도서 본문 검색 서비스를 시작한 인터넷서점 예스24는 책 판매량이 20%가량 늘었다고 6일 밝혔다. 주세훈 예스24 도서사업본부 선임팀장은 “본문 검색 서비스에 대한 출판사의 문의가 늘어 담당자를 추가 배치했다”고 말했다.

2년 전 포털 사이트 네이버가 도서 본문 검색 서비스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출판사들은 독자들이 검색된 내용만 읽고 말아 책 판매가 저조해질 것이라며 콘텐츠 제공을 꺼렸다.

그러나 도서 본문 검색 서비스를 실시한 뒤 네이버의 책 판매액은 월 1억 원에서 하루 1억 원으로 급증했다. 2003년 본문 검색 서비스를 시작한 미국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서도 도서 본문 검색을 해본 고객의 구매율이 그렇지 않은 고객보다 9%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하반기 출판된 ‘모든 날이 소중하다’는 본문 검색 기능을 마케팅에 활용해 덕을 본 경우다. 출판 당시 3주간 1∼30페이지를 본문 검색이 되도록 열어놓은 이 책은 한 달 만에 초판 3000부가 모두 팔렸다. 지난해 베스트셀러인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 최근 출간된 ‘배려’ 등도 본문 검색을 마케팅에 활용해 성공했다.

네이버의 고석원 검색콘텐츠 유닛장은 “영화를 고를 때 영화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예고편이 가장 중요하듯 인터넷 세대는 이제 책에 대해서도 예고편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푸른숲 출판사 김혜경 대표는 “단행본은 유통 수명이 6개월을 넘지 못하는데 본문 검색에는 출간된 지 오래된 책들도 포함이 돼 책 수명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예고편’뿐 아니라 책 본문 전체를 공개하는 ‘책 시사회’도 등장했다. 전자책 기업 북토피아는 1주일에 2권가량의 신간을 전자책으로 제작해 약 1주일간 본문을 모두 보여주는 책 시사회를 열고 있다. ‘몸에 좋은 색깔 음식 50’을 펴낸 고려원북스처럼 책 출간 이전에 시사회용 전자책을 먼저 만드는 출판사도 등장했다.

아예 책의 ‘요약 샘플’을 만들어 보여주는 서비스도 운영 중이다. 책 내용의 5%가량을 요약해 제공하는 인터넷 회사인 북코스모스에는 현재 개인 회원 1만여 명, 단체회원 200여 곳이 가입해 있다.

문제는 ‘맛보기’로 얼마나 보여주느냐 하는 것. 현재 본문 검색으로 읽을 수 있는 분량은 검색어 앞뒤로 1000자가량, 전체적으로는 책 내용의 10분의 1 이내다.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정보 욕구를 충족하는 범위가 왜 10분의 1인지에 대해서는 출판계에서 합의된 바가 없다.

인터넷의 특성상 실용서가 강세여서 대부분의 인문교양서 출판사들은 ‘맛보기’ 서비스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한편 북토피아는 도서 본문 검색 범위를 늘려달라는 요구가 많아 페이지 별로 요금을 부과하는 ‘페이지 과금제’ 도입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페이지 당 돈을 내고 책을 읽는 이 방식이 도입되면 책 소비의 패턴이 또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이 아날로그 책을 해체해서 수용하는 ‘디지로그 북’이 등장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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