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검찰은 초과권력” 발언에 檢 “왜 또 그러실까”

  • 입력 2006년 2월 3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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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검찰은 남의 계좌를 다 들여다보지만 자기 계좌는 안 보여 주는 유일한 조직이다”라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지자 일선 검사들은 “논리적으로나 법리적으로나 이해할 수 없는 얘기”라는 반응을 나타냈다.

노 대통령은 1일 열린우리당 원내지도부와의 청와대 만찬에서 검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토로했다. 김종민(金鍾民) 대통령국정홍보비서관은 2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린 ‘검찰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이란 글을 통해 노 대통령의 발언을 전했다.

노 대통령은 “사실 (검찰이) 정치인들 계좌는 다 뒤져 본다”며 “나에게 후원금 준 사람을 잡아넣고 열린우리당 사람들 압수수색하고, 생각하면 참 답답하지만 결국 그런 것이다”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나와 가족, 측근의 계좌가 샅샅이 추적당하는 것을 감수하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니었다”는 말도 했다.

노 대통령은 “그렇지만 다음에 누가 정권을 잡아도 검찰을 함부로 휘두르기 어려운 문화가 만들어지면 전체적으로 그게 우리가 가고자 하는 목표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김 비서관은 “대통령이 취임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대통령 자신의 ‘초과권력’을 내놓은 것이며 지난 3년 우리 사회 전체가 이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큰 물줄기는 잡혔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가 검찰의 초과권력이라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대통령은 검찰이 초과권력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상호 견제와 균형이 제도화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검사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서울지역의 한 간부 검사는 “상호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 견제는 법원과 국민, 언론의 몫이지 정치권력이 할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검사들은 ‘계좌추적’ 발언에 대해서도 이견을 나타냈다. “검찰이 정치인이나 권력의 계좌추적은 열심히 하고 검사들 계좌추적은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계좌추적의 기본 시스템을 알면 할 수 없는 얘기라는 것이다.

실제로 계좌추적은 범죄 혐의가 있거나 그와 관련된 계좌에 대해 법원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이뤄진다. 과거에는 특정 계좌에 대해 한번 영장을 받으면 그 계좌에 입출금으로 연결된 다른 계좌도 모두 추적할 수 있었다. 이른바 ‘포괄 영장’이었는데, 몇 년 전부터 과잉 수사와 인권 침해 논란이 일어 폐지됐다. 지금은 개별 계좌에 대해 모두 영장을 받아야 한다.

한 검사는 “추적하는 계좌의 주인이 정치인이거나 대통령 측근이거나 하는 것은 계좌추적의 결과일 뿐”이라고 말했다. 영장을 받아 계좌를 추적하다 보면 그것이 정치인까지 연결돼서 결과적으로 정치인 계좌를 보게 되는 것이지 처음부터 정치인을 노리고 추적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또 검사들 계좌추적은 하지 않는다는 말에 대해서도 타당하지 않다고 말한다. 지방의 간부 검사는 “1999년 대전 법조비리 사건 수사 때 사건에 연루된 검사들의 계좌가 샅샅이 추적당했다”고 말했다.

대검 관계자도 “검찰은 지금도 내부 감찰과 관련해 필요하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계좌추적을 한다”고 말했다.

재경 지검의 한 중견 검사는 “검찰 수사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말은 고맙지만 계좌 관련 발언은 대통령이 편협한 경험을 토대로 사실과 다르거나 법리에 맞지 않는 얘기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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