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12월 1일 개봉 ‘해리 포터와 불의 잔’

  • 입력 2005년 11월 17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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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티를 벗고 한층 성숙한 모습으로 찾아온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의 주인공과 등장인물들. 왼쪽 끝이 해리 역의 대니얼 래드클리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론 역의 루퍼트 그린트, 오른쪽 끝이 헤르미온느 역의 에마 잡슨이다. 사진 제공 올댓시네마
아이 티를 벗고 한층 성숙한 모습으로 찾아온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의 주인공과 등장인물들. 왼쪽 끝이 해리 역의 대니얼 래드클리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론 역의 루퍼트 그린트, 오른쪽 끝이 헤르미온느 역의 에마 잡슨이다. 사진 제공 올댓시네마
더 어둡고 더욱 무서워졌다. 액션과 서스펜스도 보다 강렬해졌다.

12월 1일 국내 개봉을 앞둔 ‘해리 포터와 불의 잔’(감독 마이크 뉴웰)은 시리즈 전편에 비해 모든 강도가 세졌다. 기쁨과 슬픔, 성취와 좌절 등 감정의 깊이와 비주얼의 폭이란 면에서도 그렇다. 해리(대니얼 래드클리프)와 론(루퍼트 그린트), 헤르미온느(에마 잡슨) 등 주인공을 맡았던 세 아역 배우가 이제는 훌쩍 컸다. 뺨 붉은 숙녀, 어깨 듬직한 청년의 티를 제법 낸다. 한마디로 이번엔 어른 관객을 위한 판타지 영화라는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영화의 중심엔 해리가 넘어야 할 두 개의 고비가 가로질러 있다. 하나는 그 실체를 처음 드러내는 절대 악 볼드모트(랄프 파인즈)와 해리의 맞대결. 다른 하나는 난생처음 해리의 가슴을 설레게 만든 사춘기 풋사랑의 어설픈 시작과 실연(?)의 아픔이다.

클라이맥스인 볼드모트와 해리가 만나는 숙명의 대결에 이르기까지 해리는 마법경연대회인 트리위저드 대회 출전이라는 또 다른 도전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대회는 해리가 다니는 호그와트 등 유럽의 세 명문 마법학교가 참여해 ‘불의 잔’을 놓고 가장 뛰어난 마법사 챔피언을 가리는 행사. 대회 자체가 흥미진진한 만큼 매우 위험한 경기여서 출전자의 나이도 17세 이상으로 제한돼 있다. 그런데 뜻밖에 세 살이나 어린 해리가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이 대회에 나가게 된다.

해리를 비롯한 대회의 출전자들은 3개의 과제를 풀어야 한다. 사나운 용과 목숨을 건 한판 싸움, 호수 속에 갇힌 사랑하는 사람 구하기, 하늘 높이 키를 뻗친 나무들이 앞을 가로막는 미로를 빠져나오는 것이다. 해리가 이 과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영화는 첨단 특수효과와 분장, 컴퓨터 그래픽을 마음껏 동원해 박진감 넘치는 비주얼을 풍부하게 생산해 낸다.

막상 해리는 우승을 바로 눈앞에 둔 시점에서 부모님을 죽인 원수 볼드모트와 직접 대결을 벌이게 된다. 볼드모트가 해리의 피를 이용한 마법의 약으로 자신의 모습을 처음 드러내는 장면, 이어 해리를 ‘고문’하는 장면은 어른이 보기에도 끔찍하고 잔인하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해리를 비롯한 세 주인공의 달콤쌉싸름한 풋사랑도 적절한 비중으로 삽입돼 호러영화로 기울지 않게 균형을 잡는다. 잔인한 용과도 당당히 맞서 이긴 해리가 막상 좋아하는 여자 초 챙 앞에선 입이 얼어붙어 말도 제대로 못하는 ‘소심남’으로 변하는 장면에선 웃음이 터진다. 마법대회에 참가한 세 학교의 학생들이 연미복과 드레스를 갖춰 입고 참가한 얼음궁전의 크리스마스 무도회도 눈을 즐겁게 한다.

‘해리 포터’ 시리즈가 늘 그렇긴 하지만 이번에도 누가 해리의 적이고, 누가 해리의 편인지 헷갈리는 구조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조성된다. 마이크 뉴웰 감독 스스로도 이번 영화가 스릴러에 가깝다고 말한다.

숱한 판타지 대작이 그렇듯이 이 영화에서도 비주얼의 향연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2%의 아쉬움이 남는다. 방대한 원작을 압축한 데 따른 어쩔 수 없는 결과일까. 화려한 화면 안에 인물들의 미묘한 심리 변화와 이야기의 여운은 파묻혀 버린 느낌이다. 사실 요란한 스펙터클도 이 영화 저 영화에서 자주 반복되다 보니 신선함을 주지 못한다.

벌써부터 시리즈의 다음 편은 얼마나 더 강하게 나가야 관객들이 만족할까, 그것이 걱정된다. 12세 이상.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해리 포터 성공요인…컴퓨터 게임 구조와 닮았다▼

62개 언어로 옮겨져 세계적으로 2억5000만 권이 팔려 나간 해리 포터 시리즈의 여섯 번째 이야기 ‘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사진)가 국내서도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영국 아동문학을 전공한 서울대 손향숙 초빙교수가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기고한 ‘해리 포터는 아동문학의 고전으로 남을 것인가’란 글을 통해 해리 포터 현상을 조명했다. 손 교수의 글을 요약 소개한다.

작가 조앤 롤링의 기발한 착상, 고풍스럽고 기괴한 이름들, 온갖 괴물의 출현은 독창성과 특이함을 갈구하는 독자들의 욕구를 만족시켜 준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성공 요인이다.

사실 해리 포터 이야기는 영국의 문학 전통에 빚지고 있다. 학교 소설, 영웅 이야기, 마법 소설 같은 것들이다. 해리 포터 이야기의 배경은 호그와트 마법학교다. 이는 토머스 휴스가 1857년 펴낸 ‘톰 브라운의 학창시절’ 이후 이어진 학교소설 전통에서 나온 것이다. 영국 전래의 소년 영웅 이야기 ‘거인을 물리친 잭’ ‘엄지 소년 톰’도 영향을 미쳤다.

해리 포터 이야기는 현대 기술을 마법으로 치환해 기술 문명에 대한 현대인의 불안을 잠재우고 있다. 생명체의 움직임을 보여 주는 마법 지도, 뼈를 다루는 갖가지 의학적 마법이 그렇다. 마법학교에서 아이들이 하는 퀴디치 게임에 나오는 빗자루는 급상승과 급강하, 180도 공중회전이 자유로우며 전투기를 떠올리게 한다. 빗자루의 성능은 가격에 직결된다. 독자들은 더욱 뛰어난 마법사, 더욱 강력한 마법(기술)을 원하게 된다.

해리 포터의 모험은 하나씩 단서를 풀어 가면서 더 어려운 단계로 옮겨가는 컴퓨터 게임 구조를 닮았다. 이는 흡인력이 강하며, 독자들은 마법 세계의 규칙, 이름, 기능에 익숙해질수록 더 심하게 중독된다.

남성 중심주의와 애국주의를 넘어선 것도 경쟁력이다. 호그와트 마법학교는 남녀공학이다. 과거 학교소설 속의 ‘크리켓’은 남성 중심이었지만, 퀴디치 게임에는 여학생도 참가한다.

해리 포터의 영화 판권을 갖고 있는 AOL 타임워너의 영향력도 기여했다. 이 그룹 산하 CNN이 해리 포터 마니아들과의 인터뷰를 계속 내보내고, ‘피플’ ‘포천’ ‘머니’ 등의 잡지는 작가 롤링의 성공 스토리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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