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동관]‘임을 위한 행진곡’과 대통령 찬가

  • 입력 2005년 11월 7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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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은 “역대 대통령을 만나러 집무실을 들어설 때마다 ‘참모들이 목을 걸지 않고는 직언(直言)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종종 말한다. 대통령이 입고 있는 ‘권력의 갑옷’이 너무 두껍고 무겁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역대 대통령에 대한 참모들의 ‘직언록’은 책으로 펴내도 여러 권이 될 정도다.

김대중 정권 최고 실세였던 박지원 씨가 정책기획수석비서관이던 2001년 어느 날. 박 수석은 DJ가 요직(要職)에 기용하고 싶어 하는 모 인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그 사람은 안 된다”고 직언했다. 이날로 세 번째 같은 얘기를 듣는 DJ는 짜증을 냈고, 박 수석은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DJ는 박 수석을 다시 불러 당부했다. “내가 화를 내더라도 자네는 앞으로도 계속 그런 얘기를 해 주어야 하네. 그게 자네 임무야.”

1997년 봄.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현철 씨 구속 문제가 정국을 흔들었다. 문종수 민정수석비서관은 YS의 집무실 책상 앞에서 ‘현철 씨를 구속해야 하는 이유’를 적은 보고서를 읽어 내려갔다.

참여정부 들어 대통령 권력의 갑옷은 과거보다 얇아지고 가벼워졌다. 노무현 대통령과 참모들이 맞담배를 피우고 총리가 “노 대통령의 허리가 안 좋다”고 말해도 문제가 안 된다. 그런데도 ‘직언 부재(不在)’는 참여정부의 문제에서 빠지지 않는 주제어다. 참모와 각료들의 대통령 찬양도 과거 ‘제왕적 대통령’ 시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핵심을 뚫고 들어가는 기백, 뛰어난 정치적 상상력’(김창호 국정홍보처장) ‘박정희는 고교 교장, 노 대통령은 대학 총장’(이백만 국정홍보처 차장) ‘대통령은 21세기, 국민은 독재시대’(조기숙 홍보수석비서관).

여기서 상황을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될 만한 일화 한토막이 떠오른다. 1956년 8월에 열린 북한 노동당 중앙전원회의. 김일성 개인숭배에 대한 당 간부들의 성토가 이어지는 와중에 윤공흠 상업상이 등단해 개인숭배와 당 운영체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자 중앙위 부위원장 최용건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 뭐가 어째. 내가 항일(抗日)할 때 넌 천황 폐하 만세 불렀어.” 결국 회의는 난장판이 됐다.(김일성의 비서실장 고봉기의 ‘유서’에서)

이처럼 특정 집단의 이념과 가치관이 한쪽으로 편향돼 있으면 올곧은 소리는 발붙이기 어렵다. 동질적 사고(思考)를 하는 ‘집단 최면’ 탓에 실체적 진실이 보이지 않거나 아예 외면하기 때문이다. 바로 사회심리학에서 말하는 ‘집단사고(groupthink)의 함정’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4·15 총선 직후 청와대에서 열린우리당 소장 의원들이 불렀던 운동권 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과 최근의 ‘노비어천가(盧飛御天歌)’는 ‘코드’라는 한 가지 쇳물로 만든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코드에 모든 것을 맞추는 참모와 각료들의 행태는 세금 내서 월급 주는 국민 처지에서 보면 용납할 수 없는 배임(背任) 행위다.

백악관, 행정부, 기업 등에서 40년 넘게 요직을 맡아 온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의 ‘럼즈펠드 규칙’의 첫 항목을 부디 잊지 말라. ‘대통령에게 욕을 퍼붓는다고 생각할 만큼 직언할 용기가 없으면 참모 자리에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이동관 논설위원 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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