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기업간 상생경영]지역 클러스터 경쟁… 한마음으로 뛰어야

  • 입력 2005년 11월 3일 03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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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시대의 경쟁 단위는 ‘지역’과 ‘기업’이다. 혹자는 심지어 기업 간 경쟁의 시대가 가고 이제 클러스터 간 경쟁시대에 접어들었다고까지 한다. 글로벌 경쟁시대에는 기업과 마찬가지로 지역도 스스로가 경쟁력을 갖추고 끊임없이 진화하는 생명력을 갖추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

산업 공동화는 국가적 문제이기 이전에 지역으로서는 생존이 관련된 심각한 문제이다. 1990년대 이후 경쟁력 있는 지역으로 거듭 태어난 선진국 도시들의 예를 살펴보면, 산업클러스터로서 지속적 발전을 유지해가기 위한 지역혁신체제를 갖추고 글로벌 경쟁의 새로운 경쟁자로 부활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정보화 시대 지식기반 사회에서도 산업의 특정 지역 집적이 여전히 경쟁력 창출에 유효하다는 것은 일종의 역설이다. 경쟁이 세계화할수록 예상되었던 ‘거리의 소멸’이 아니라 오히려 공간적 지리적 근접성의 중요성이 더 증대되고 있다. 정보통신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대면 접촉을 통한 암묵 지의 획득과 창출의 중요성이 지식과 학습 활동을 여전히 공간적으로 제한하고 있어, 새로운 지식에 기반을 둔 경제활동들도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집적하는 경향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산업화 초기 시대부터 지리적 집중의 법칙은 존재해 왔다. 1970년대까지 공단이나 과학연구단지 건설은 거래비용과 요소비용을 절약하는 소위 정태적 집적경제를 달성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왔다. 1980, 90년대를 거치면서 정보화 지식기반 사회가 도래하자 첨단산업단지에서 산업 클러스터로 발전을 거듭하면서 종전과 달리 지역적 혁신역량을 총동원할 수 있는 효율적인 협력 네트워크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서 물리적 하부구조는 물론 대학, 연구소, 교육훈련기관 등 사회적 하부구조 건설과 지역 거버넌스 및 제도와 문화, 분위기, 규범 등 지역사회의 상부구조 구축까지를 포괄하는 소위 동태적 집적경제의 우위 확보에 관심의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다.

실제로 1990년대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산업 클러스터를 지역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핵심적인 정책수단으로 도입하고 있다. 미국의 오스틴, 클리블랜드, 위치토, 실리콘밸리 등을 위시하여 네덜란드의 림부르흐, 영국 웨일스 지방 등이 지방정부 중심으로 클러스터를 추진한 성공적인 사례들이다. 이러한 흐름은 우리나라에서 현재 추진되고 있는 국가차원의 지역혁신 클러스터 구축 사업을 위시하여 싱가포르의 IT2000, 중국의 푸둥, 중관춘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역혁신 클러스터에 대한 연구는 산업 클러스터에 관한 연구와 지역혁신 클러스터에 관한 접근 등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전자는 마이클 포터 교수의 주장에서 나타나듯이 성공적인 산업 클러스터의 형성을 위해서는 지역 내에 전문 기술과 지식이 존재해야 하고, 관련 기관과 경쟁자들의 집적이 중요하며, 여기에 수준 높은 고객까지 존재하여 이들을 연계해 주는 상호작용을 통한 학습과 혁신이 이루어지는 메커니즘을 강조한다.

후자로는 글로벌 경쟁하에서 지역 단위로 기술혁신체제의 구조적 경쟁력을 제고할 것을 역설한 윌리엄 밀러(1996)가 있다. 헨턴·멜빌·웨일시(1997)는 전문화된 집적지역과 지역사회를 협력적 경제 공동체 체제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할 수 있는 지역의 협력적 리더그룹인 소위 ‘시민 기업가들(civic entrepreneurs)’의 존재여부가 도시혁신 클러스터 형성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주장한다.

클러스터에 참여하는 기업에는 전문화된 기술과 경험을 보유하고 축적된 인적자원 및 원자재 부품 공급자의 획득이 용이하고, 기술혁신을 촉발시키고 개발기간을 단축시켜 줄 수 있는 정보와 기술의 확산에 대한 접근이 용이하다는 편익이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글로벌 경쟁력의 원천인 지식창출과 기술혁신을 촉발시키는 하부구조의 역할을 한다. 따라서 글로벌 경영을 지향하는 기업이라면 경쟁력 강화와 신산업전개를 위하여 지역혁신 클러스터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클러스터를 통하여 혁신의 속도를 높이고 부족한 경영자원을 보완함으로써 리스크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클러스터가 이러한 기능과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기업 또한 지역혁신 클러스터에 참여하여 자신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실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헨턴·멜빌·웨일시는 지역혁신 클러스터 형성 과정을 도입→보육→실행→개선의 4단계로 구성된 지속적인 발전을 유지해가는 순환 메커니즘으로 보고, 이 과정에서 핵심적 기능을 수행하는 시민 기업가들의 역할이 단계마다 달라진다고 주장한다. 기업의 입장에서 시민 기업가로서의 역할은 비전 제시자, 시스템 통합자와 전문 공급자 등 클러스터를 구성하는 3대 주체로 재정의할 수 있다. 비전 제시자는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산업발전 방향을 제시하며 인재공급과 벤처창업의 토대 역할을 수행하는 초우량 대기업들이 속한다. 시스템 통합자는 원천기술을 상업화하고 요소기술과 부품을 통합하여 상품화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대기업 혹은 중견기업이 해당된다. 전문 공급자는 부품과 요소기술을 제공하는 중소기업·벤처, 금융·마케팅·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원 서비스업체 등이 해당된다.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세계적인 반도체 업체인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사는 그들의 경영진이 실리콘밸리, 독일, 한국, 중국 등 어느 사업장에 근무하든지 그 지역사회에 활발히 참여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조직 문화를 정착시키고 있다. 지역사회 활동에 투입하는 시간을 경영 활동에 큰 부담을 주지 않는 수준에서 적절히 조절하면서 시민기업가 양성을 회사 내 경영진 개발 프로그램에 포함시키고 지역의 지도자들도 참여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시작하는 것도 가능하다. HP사는 자사의 구성원들이 개인적으로나 회사를 대표해서 지역사회 활동에 참여하도록 유도함과 동시에, 조직 내·외부 이해관계자들에게 새로운 협력 모델을 소개하는 세미나도 자주 제공하고 있다.

다음 단계에서는 자사의 위치와 능력에 맞게 비전 제시자, 시스템 통합자 혹은 전문 공급자로서 단계별로 지역혁신 클러스터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상호 신뢰와 협력적 문화의 정착에 솔선하는 혁신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동안 동아일보와 산업정책연구원이 공동기획한 특집 섹션 ‘프론티어 경영’에서 다루어진 ‘지속 가능 경영’과 펀(fun) 경영,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관계 구축, 윤리경영 등은 상호 신뢰와 협력적 지역 클러스터 문화를 정착시켜 경쟁력 있는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데 관건이 되는 요소들이라 할 수 있다.

백 권 호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산업정책연구원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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