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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유럽일주/0704~0710]신용카드를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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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유럽일주/0704~0710]신용카드를 잃어버렸다

입력 2005-08-25 13:59수정 2009-10-08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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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의 사탑. 사진을 찍고 있는 관광객들


7월4일 : Return Milano : 기차이용

드디어 일이 터졌다. 그 동안 아무 일 없이 잘 여행해 왔는데 하필 이탈리아에서 일이 생긴다. 조심하고 또 조심했건만.

며칠 전 밀라노에서 동원이가 ATM을 이용하다 기계가 카드를 삼키는 일이 있었다. 다음날 은행을 찾아가 이 방법 저 방법으로 카드를 찾아보려 했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는 은행 측 말에 그냥 안일하게 대처를 했었는데 거기에서 문제가 터진 것이다. 나중에 기계를 정리할 때 은행에서 알아서 처리 할 것으로 생각하고 일단 한국에 연락해 통장잔액을 모두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말했지만 길지도 않은 그 사이에 누군가 300만원에 달하는 금액을 사용한 것이다.

한국에서 이런 일이 생겨도 무척 복잡하건만 영어마저 잘 통하지 않는 이탈리아에서 이런 일이 생겨버리니 머리 속이 훨씬 복잡하다.

일단 금액도 금액이고 그 괘씸한 녀석을 반드시 잡아야 할 것 같아 밀라노로 돌아가기로 했다. 3일간 그렇게 힘들게 온 길인데, 다시 돌아가려니 억울한 마음이 가득하다.

그보다 일이 잘 처리가 됐으면 좋은데 어떤 방법으로 이 난관을 해결해야 할지.

다행히도 밀라노 근처에 사시는 원제 이모님 친구분께서 도움을 주시기로 했으니 조금은 안심이 된다.

조금 더 신중하고 확실하게 대처를 했어야 했는데 안일한 생각으로 일 처리를 한 것이 무척 후회가 된다. 부디 좋은 소식이 기다리길...

7월5일 : Milano-Firenza : 기차이동

어떻게 잠을 잤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발생한 일에 대해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해 다들 방법을 강구하느라 머리 속이 복잡한 것 같다.

의사소통이 원활한 것도 아니고 행정적인 절차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기에 다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문제의 은행으로 출발. 어제 미리 연락을 취해 도움을 주기로 하신 교민분과 함께 말이다.

은행 문이 열리자마자 당시 근무하고 있던 직원을 찾아 도움을 요청했다. 솔직히 이번 사건의 용의자로 은행직원도 배제할 수 없기에 약간은 강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분명 사건 당시에 동원이와 영어로 대화를 한 이 직원이 영어를 할 줄 모른다고, 또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발뺌부터 하니 시작부터 난관이다.

너희의 책임은 묻질 않을 테니 증인이라도 되어달라고 좋게 이야길 해도 또 경찰에 신고를 하겠다고 강하게 이야길 해도 이 얄미운 녀석은 자기는 아무 일도 모른다며 자꾸 자리를 피하려고 한다.

아무리 좋은 방법을 모색해도 답이 나오질 않는다. 무엇보다 은행에서 어떤 방법으로 도움을 줄 수가 없다면 범인을 잡는 것이 더 확실할 것 같다. 하지만 이마저도 도통 쉬운 방법은 아니다.

일단 외사과로 향해 도난신고를 하지만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분실에 대한 서류를 꾸며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직접 112로 신고도 해보지만 진지하게 듣기는커녕 외사과에 신고했으면 됐지 뭘 어떻게 하냐고 오히려 되묻는다.

이거 참… 난감하기 짝이 없다.

이놈의 나라는 서로에게 책임전가하기 바쁘니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분명 우리 실수가 더 큰 일이기에 어느 정도의 책임은 감수를 하겠지만 의무를 가진 공권력에서 조차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질 않으니 화가 치밀어 오른다. 정작 점심시간은 칼같이 지키면서.

이러 저리 뛰어다니며 바쁘게 보낸 하루지만 아무 성과가 없다는 사실에 허탈함이 더욱 크다. 스스로에 대한 자책에 더욱 힘들어지는 하루다.

다들 쳐진 어깨를 이끌고 피렌체로 향하는 기차에 오른다.

7월6일 : 피렌체 관광

어제 10시가 넘은 시간에 피렌체에 도착했다.

거의 한달 반 만에 한인 민박집에 들어가기로 해서 무척 기대를 안고 왔건만 주인아줌마의 태도가 처음부터 무척 쌀쌀맞은 게 영 마음에 들질 않는다.

이거야 돈 내고 자면서 잠깐 나갔다 초인종 누르는 것도 미안할 정도니 이번 민박은 한참 잘못 들어온 것 같다.

어차피 노숙하며 젖소들과도 같이 자는 마당에 잠자리 정도야 뭐 그리 신경 쓰고 싶진 않지만 먼 곳 유럽에서 같은 한국 사람한테 이렇게 푸대접을 받으니 더 많이 서운하고 기분이 좋질 않다.

한국의 정이 가득한 아침밥을 기대했건만 역시 무척이나 인색한 아침을 먹고 일찍 피렌체 시내로 나간다. 그래도 다행인건 같이 민박을 하는 대학생 동생들과 마음이 잘 맞아 관광을 같이 하기로 했으니 이렇게라도 한국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야겠다.

비교적 작은 편에 속하는 피렌체.

이탈리아 관광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피렌체를 무척 기대했다.

하지만 시내에 들어서는 순간 넘쳐나는 관광객들이 먼저 우릴 반기니 감상보다도 복잡함에 정신이 없다.

언젠가 영화 '열정과 냉정 사이'에서 봤던 그 한가하고 낭만적인 피렌체의 모습을 재현하고 싶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그 느낌, 그 감정을 살릴 수가 없기에 아쉬움과 함께 맥이 빠진다. 다른 유럽에서 느끼지 못하는 세월의 흔적들이 이렇게 많은 전 세계 관광객들을 유혹하지만 정작 이 많은 사람들 때문에 그 세월의 흔적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사실이 무척 안타깝다.

그나마 두오모 성당 옆에서 들었던 한 무명 기타리스트의 잔잔한 연주가 아쉬운 마음을 달래준다.

항상 느끼지만 모든 사람의 감정은 다르다. 특히나 여행에서 느끼는 감정은.

많은 사람이 좋다고 하는 사물을 보고 내게 아무런 느낌이 없다면 어서 빨리 내게 감동을 줄 만한 무언가를 찾는 게 상책이다. 의무감에 그 자리에 서 있다면 시간 낭비일 뿐.

만남을 좋아하는 나로선 당분간 교감이 이루어질만한 사람을 만나는데 조금 더 힘을 쏟아야겠다.

7월7일 : Firenze-Pisa : 101km

도무지 정이 가질 않는 민박집에서 서둘러 짐을 챙겨 나왔다.

오히려 내가 소금이라도 뿌리고 싶은 심정이지만 내 인격을 위해 건강하시라는 말과 함께.

오늘 기형적으로 기울어진 탑으로 유명한 피사를 향해 간다.

본의 아니게 기울어진 탑이 또 수많은 관광객을 유혹하니 잘난 조상 덕에 이곳 후손들은 무척 행운이다.

피사로 향하며 지난 번 독일에서 했던 실수를 다시 한번 반복.

절대 무식해서가 아니라 친절했던(?) 이탈리아 청년의 설명에 맞게 길을 왔건만 오늘 역시 고속도로로 들어왔다. 이 녀석이 고의적으로 그랬는지 마지막에 반복하며 행운을 바란다는 말이 조금은 이상했지만 녀석의 말대로 행운을 바래야 할 상황이다.

이미 들어온 길을 거슬러 나가는 것은 훨씬 더 위험한 일이기에 정신없이 패달을 밟아 겨우겨우 이 위험한 고속도로를 빠져나간다. 어제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 정신이 없더니 오늘은 쌩쌩 달리는 차들 때문에 정신이 없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치고 도착한 피사.

무척 작고 보잘 것 없는 도시지만 심하게 기울어진 탑 덕택에 이곳 역시 꽤나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오래 전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부피에 상관없이 질량이 같으면 떨어지는 속도가 같다는 것을 입증했던 피사의 사탑.

많은 복원 작업을 거친 탓인지 외형이 무척이나 깨끗하다.

가만히 밑에서 사탑 위에 있는 구름에 시선을 맞추고 있으며 움직이는 구름 때문에 마치 탑이 나를 향해 쓰러지는 것 같다.

7월9일 : Livordo-Roma : 기차이동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

정말 그렇듯이 이탈리아 어느 도시에서건 로마로 가는 교통편은 무척 많다.

덕분에 느지막한 시간에 일어나 유럽에서 처음 만난 바다에서 낚시까지 하는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낚시의 기다림을 무척 좋아하는 나로선 이 아름다운 이탈리아 바다에서 낚시를 드리우고 고기들의 입질을 기다리는 것은 무척 행복한 시간이다. 덤으로 월척은 아니지만 몇 시간의 사투(?) 끝에 손바닥만한 바다 고기 두 마리까지 잡았으니 이 보다 더 즐거울 수 있을까.

요즘 들어 기차로 이동하는 구간이 꽤나 많아졌다. 애당초 한국에서 세운 계획이긴 하지만 왠지 우리 임무에 충실하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덕분에 우리 여행에 조금은 여유가 생기긴 했지만 기차를 타고 가며 보는 이 아름다운 모습들을 감상할 사이도 없이 그냥 지나치는 것 또한 무척 아쉬운 일이다.

로마로 가는 기차에서 가이드북을 펼쳐놓고 고민이다.

콜로세움, 베네치아 광장, 트레비 분수, 바티칸 박물관… 보고 싶은 곳들이 너무나도 많다.

유럽 많은 곳을 돌아다녀보지만 이 보다 더 많은 볼거리가 한 도시 안에 있었던가.

거대한 역사의 도시 로마답게, 며칠의 여유를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7월10일 : 로마시내 관광

장구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로마.

로마는 분명 굉장한 매력을 지닌 도시이다.

처음 로마에 들어와 무척이나 낡은 건물들의 모습에 조금은 실망할 수 있다. 약간은 지저분하고 할렘가를 연상하는 느낌. 하지만 이것은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많은 유물이 존재하기에 함부로 건물을 짓거나 철거할 수 없는 로마법에 따른 것이란다. 오히려 수차례 복원작업을 거친 유물들은 무척이나 깨끗한 모습이다.

베네치아 광장이며 이미 로마의 상징이 되어 버린 콜로세움, 낭만의 장소로 유명한 트레비 분수, 로마 속의 또 다른 작은 나라 바티칸 시국…

볼 것이 너무 많다. 오히려 이 많은 것들이 한 도시 안에 다 있으니 받아드리는 나로선 그저 하나의 대단함과 놀라움으로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이름 자체가 '거대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콜로세움.

2,000년에 가까운 세월을 보냈지만 아직도 거의 원형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이 놀라운 건축물은 영화 '글레디에이터'를 통해 우리에게 더욱 친숙하다. 지금은 관광객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 오랜 전 검투사와 맹수의 대결에 환호성을 지르던 로마시민들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웅장함만큼이나 그 구조에 있어서도 수십 개의 출입구와 효율적인 동선으로 관중 5만을 수용하는데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과연 지금 내가 두 눈으로 보는 그 모습 그대로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을지 수차례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한참을 책을 보며 명소 이곳저곳을 반드시 기억할 것을 다짐하지만 돌아서는 골목마다 범상치 않은 건축물이 그 자태를 뽐내니 머리 속이 복잡하다. 좋지 않은 머리와 무지를 탓하며 골목을 돌아서는 순간, 삼거리 로터리에 또 하나의 대단한 분수가 저 앞에 있다.

트레비 분수.

분수치고는 광대하게 뿜어져 나오는 물과 그 우렁찬 물소리가 무척 인상 깊다.

무척이나 역동적이다. 이 역동적인 분수 앞에서 로마로의 귀환과 사랑, 이혼을 기원하며 동전을 던지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재미있다.

분수를 등지고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 너머로 동전을 던져 한번에 위쪽에 올라가면 로마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는 것, 두 번째 동전은 원하는 사랑이 이루어지고, 마지막 세 번째 동전은 이혼하게 된다는 출처가 불분명한 이야기가 관광의 재미를 더해준다. 조용히 주머니의 동전 두 개를 꺼내본다.

자전거 핸들을 돌려 로마 속의 작은 나라 바티칸을 향해본다.

어차피 내일 하루를 바티칸 관광에 투자하기로 했기에 아주 조금 맛만 보러 간 것이지만 이 조금 맛본 것에 이미 홀딱 마음을 빼앗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베드로 성당의 돔을 하나님의 머리, 성당 건물을 가슴,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열주(백색 대리석 기둥)를 하나님의 두 팔.

광장에 서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돌아오는 길에 또 하나의 명소 스페인 광장에 들려 많은 사람들 속에 자리를 잡고 앉아 로마의 분위기를 느껴본다. 여름휴가를 위해 로마시민들이 떠난 도시를 이렇게나 많은 관광객들이 대신하고 있으니 로마는 정말 축복받은 도시이다.

지는 해와 분수의 물줄기가 만들어내는 모습이 꽤나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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