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TV “사과… 사과… 사과…”

  • 입력 2005년 8월 2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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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가 사과만 하는 방송사가 되는 것 아니냐.” MBC의 한 중견 기자는 한 달 새 ‘성기 노출’ 등과 관련해 3차례나 공식 사과 방송을 내보내게 되자 참담한 심경을 털어놨다.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사는 올해 들어 20차례 이상 사과방송을 내보냈다. 예년에 기껏해야 5, 6건에 불과하던 사과방송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가 최근 방송사 요구에 따라 방송광고 요금 단가를 다음 달 초 9%가량 인상하려고 했으나 이 같은 사태가 발생하자 전면 보류했다.》

▽사과방송=MBC는 올해 뉴스데스크를 통해 5차례나 사과방송을 내보냈다.

MBC는 가요프로그램 ‘생방송 음악캠프’에서 출연자의 성기 노출(7월 30일), 일본 731부대의 생체실험 발굴 영상 오보(8월 16일), 검-경-언 로비 의혹 사건 관련 보도국 간부와 기자, 일반 직원의 향응 및 금품 수수(8월 21일) 등 세 차례에 걸쳐 사과했다.

또 1월엔 ‘보도국 간부와 기자의 명품 핸드백 수수’ 건에 대해, 6월엔 오락 프로그램인 ‘파워TV’에서 1박 2일 촬영한 내용을 2박 3일 촬영한 것처럼 거짓 방영한 데 대해 사과했다.

이 밖에 진행자나 연기자의 말실수와 자막오류 등에 관련된 사과도 4건에 이른다.

KBS도 사과의 횟수와 강도에 있어 MBC 못지않다.

KBS는 7월에 방영된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에서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뺨을 때리는 장면에 대해 사과했다.

KBS 정연주(鄭淵珠) 사장은 4월 지역방송 PD가 출연자 명단을 허위 작성해 3000만 원의 돈을 횡령한 사건으로 직접 사과를 했고 시사프로그램 ‘생방송 시사투나잇’의 한나라당 전재희(全在姬) 의원의 누드 패러디에 대해서도 KBS를 방문한 한나라당 의원단에 사과했다. 또 KBS는 3월 회사 측이 노동조합 간부회의를 도청한 것에 대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SBS는 8월 드라마 ‘루루공주’에서 여성 캐디를 비하한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사과했으며 6월 ‘군 알몸 사진’ 사건을 보도하면서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의 발언을 내보냈으나 이 발언이 경기 연천군 최전방 감시소초 총기난사 사건 때 인용했던 것을 짜깁기한 것으로 밝혀져 사과했다.

특히 세 방송사는 ‘성기 노출’ ‘시어머니 뺨 때리기’로 문제가 불거지자 이례적으로 공동 사과문을 내기도 했다.

▽단순 실수를 넘어선다=방송 관계자들은 방송사의 사과 대상이 단순 실수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빚어진 우발적 사고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방송의 도덕성과 윤리, 취재 원칙에 어긋나는 사례로 사과를 한 것은 방송 제작시스템의 기본이 무너졌다는 적신호라는 진단이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뺨을 때리는 장면이나 누드 패러디는 공영방송이 지켜야 할 선을 넘어서서 시청자의 분노를 샀다. ‘올드미스 다이어리’ 제작진은 극단적인 상황 설정으로 문제점을 부각시키려고 했다고 밝혔지만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해야 할 공영방송에서 과연 극단이라는 카드를 썼어야 했는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PD의 공금 횡령과 보도국 간부, 기자가 향응과 금품을 받은 사례는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언론인의 자세에 어긋나는 사례다.

또 파워TV의 거짓 연출, 알몸 사진 보도의 관련자 발언 짜깁기 처리 등은 정확성을 추구해야 할 방송 보도와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를 추락시킨 사례로 꼽힌다.

황근(黃懃·신문방송학) 선문대 교수는 “독점적 지위를 가졌지만 자율 규제의 틀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방송사의 잠재된 문제점이 다매체 환경에서 경쟁이 치열해지자 한꺼번에 터진 것”이라며 “방송사 스스로 자율적인 규제 시스템을 갖춰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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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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