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논술교육 몇살부터?… 10세이후 가르쳐도 늦지 않아요

  • 입력 2005년 8월 23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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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 교육 무조건 일찍 시작하라?’ 논술이 강조되면서 미취학 아동에게까지 ‘논술 조기교육’이 성행하는 데 대해 전문가들은 너무 이른 논술지도는 자칫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서울 교보문고의 아동용 논술교재 앞에서 학부모와 자녀가 책을 읽고 있다. 전영한  기자
‘논술 교육 무조건 일찍 시작하라?’ 논술이 강조되면서 미취학 아동에게까지 ‘논술 조기교육’이 성행하는 데 대해 전문가들은 너무 이른 논술지도는 자칫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서울 교보문고의 아동용 논술교재 앞에서 학부모와 자녀가 책을 읽고 있다. 전영한 기자
《두 달 전부터 김지호(5·서울 서초구 서초동) 군은 일주일에 한 번씩 인근 학원의 논술강사로부터 ‘예비 논술’에 대해 개인 교습을 받고 있다.

수업 내용은 책을 읽고 간단한 독후감을 쓰거나 일기를 쓰도록 하는 것.

어머니 강모(32) 씨는 “영어유치원을 다녀 국어를 사용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데다 논술의 중요성이 강조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08학년도 대학입시에서 논술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초등학생, 미취학 아동까지 ‘논술 조기 교육’에 나서고 있다.

학부모 사이에선 ‘취학 전 필독서’는 물론 ‘취학 전 필수 논술교재’ 목록까지 나돌 정도.

그러나 국어교육 전문가들은 만 10세 이하의 조기 논술교육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이다.

득보다 실이 더 클 수 있다는 조언이다.》

○ 미취학, 초등학생까지 논술

서울 교보문고의 아동도서코너에는 최근 ‘아동용 논술 교재’라는 분야가 새로 만들어졌다.

‘논술은 초등학생 때부터’, ‘초등 논술’, ‘재미있는 글짓기, 신나는 논술’ ‘논술형 아이 엄마가 만든다’ 등 논술이라는 제목을 단 아동용 글쓰기 교재만도 수백여 권에 이른다.

분야별로도 △‘초등학생이 꼭 알아야 할 영어논술 365’ △‘과학논술동화’ △‘논리를 꿀꺽 삼킨 논술’ 등 단순 글쓰기가 아닌 영어, 수학, 과학 등 과목별로 세분화하고 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논술·독후감·일기쓰기’ 분야의 신간(新刊)은 48권이었지만 올해는 111권. 판매 권수도 같은 기간 1만 여 권에서 1만8000여 권으로 거의 배가 됐다.

내년 3월 초등학생이 되는 딸을 둔 김민영(33·서울 노원구 상계동) 씨는 “초등학교 저학년 대상 교재 가운데 일부는 취학 전 필독서로 통하고 있다”며 “분야와 단계가 다양해서 도대체 어디까지 가르쳐서 학교에 보내야 하는지 난감하다”고 말했다.

출판뿐 아니라 학습지, 학원도 논술과 서술형 평가가 강조되는 추세를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

LC교육연구소의 박승렬 소장은 “미취학 학부모 가운데 팀을 짜서 수업을 해 달라는 요청이 크게 늘고 있다”며 “유아 대상 영재학원, 독서학원 등에도 글쓰기와 창의력 개발을 결합한 ‘논술강좌’가 강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 “지나친 선행 글쓰기 교육은 해로울 수도”

논술은 특정 주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것이어서 사고력이 부족한 시기에 가르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한세대 송인화(교양학부·작문) 교수는 “초등학교 저학년이나 미취학 아동처럼 자신의 생각이나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때는 교사의 생각을 그대로 수용해 모든 글쓰기를 ‘모범 답안’처럼 유형화해 작성하기 쉽다”고 말했다.

논술이 강조되는 본래의 취지와는 정반대로 자녀의 창의력과 사고력 계발에 오히려 부정적일 수 있다는 주장.

연세대 최유찬(국문학과) 교수도 “초등학교 저학년 이전에 글쓰기를 강조하면 창의적 표현과 상상력이 제한된다”며 “어린 자녀에게 독후감을 강조해 독서에 대한 흥미를 잃게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 능력에 맞는 글쓰기 교육은?

언어 교육을 일찍 시작해야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다만 문제는 자녀가 내용과 형식을 받아들일 만큼 성숙했는가에 있다.

한세대 송 교수는 “국어 역시 충분히 듣고 말하고 읽은 뒤에나 제대로 쓸 수 있다”며 “취학 전 아동에게는 책을 읽어주거나 읽힌 뒤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자신의 의견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도록 가르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예컨대 동화책을 읽어 준 뒤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누구인지,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지, 그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등의 질문을 던져 주라는 것. 또 아이가 황당한 대답을 하더라도 잘못을 지적하기보다는 격려하며 끝까지 들어주는 게 좋다는 조언이다.

LC교육연구소 박 소장은 “최근 엄마들 사이에서 학교에 가면 상을 타기 위해 일기 쓰기를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며 “극소수의 아이를 제외하면 미취학 아동에게는 일기 쓰기도 시키지 않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글쓰기 교육은 언제부터가 적절할까. 전문가들은 대체로 자신의 의견이 어느 정도 생기는 초등학교 3, 4학년을 꼽는다.

최 교수는 “독후감 쓰기도 사물에 대한 표현력이 제대로 갖춰지는 4학년 무렵부터 가능하다”며 “그 전까지는 책을 읽은 느낌을 엄마와 함께 이야기하는 정도가 적당하다”고 조언했다.

글쓰기를 시작하더라도 초기엔 ‘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이 드러나도록 1개 문장으로 주장을 쓴 뒤 2, 3개의 보조 문장으로 근거를 써보도록 한다. 1, 2개 단락(6∼8개 문장) 분량의 글은 초등학교 고학년은 돼야 한다.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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