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 몸 이야기]<6>발레리나 ‘아, 나의 왼발’

  • 입력 2005년 8월 20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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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건 기자
신원건 기자
발레리나들은 대부분 왼발이 오른발보다 힘이 더 세다.

오른손잡이는 오른쪽으로 회전하는 것이 더 편한 만큼 오른발을 들어올리고 왼발로 몸을 지탱하기 때문. 그래서 오른손잡이가 다수인 발레리나는 왼쪽 허벅지가 더 굵고, 종아리 근육도 왼쪽이 더 굵다. 물론 왼손잡이는 그 반대.

소수의 설움도 있다. 왼손잡이인 국립발레단의 김주원은 “독무에서는 왼쪽으로 돌아도 되지만 남자 파트너와 함께 출 때는 무조건 오른쪽으로 도는 것이 불문율”이라며 “그래서 왼손잡이는 왼발과 오른발을 모두 연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왼발이 특히 ‘수난’을 당하는 작품은 푸에테(회전 동작의 하나)와 아라베스크(한쪽 다리로 서서 다른 다리를 뒤로 뻗는 동작)가 많은 ‘백조의 호수’. 주역 발레리나는 백조와 흑조를 모두 춰야 하는데 흑조의 32회전과 백조가 추는 8분간의 아다지오는 왼발의 ‘적’. 유니버설 발레단의 황혜민은 “백조 아다지오를 마치고 나면 왼발에서 쥐가 날 지경”이라고 말한다.

주역 아닌 군무 무용수에겐 ‘라 바야데르’가 공포의 작품. 3막에서 32명의 무용수는 아라베스크를 하면서 차례로 언덕 같은 경사를 내려와야 한다. 맨 앞줄에 서는 무용수는 맨 끝줄 무용수에 비해 9배 많은 36번의 아라베스크 동작을 하며 경사를 내려와야 하기 때문에 서로 앞에 서는 것을 꺼릴 정도.

발레리나에게 발은 ‘직업적 고통’을 가장 많이 겪는 신체 부위다. 끔찍하게 혹사 당한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발레리나의 발톱은 수시로 빠지거나 부서지고, 색깔이 새까맣게 변할 정도로 보기 흉하지만, 강수진의 발처럼 심한 경우는 많지 않다. 강수진의 경우 태생적으로 ‘발레를 하기에 적합한 발’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 그렇다면 발레에 적합한 발은 어떤 걸까?

김주원은 “엄지발가락부터 넷째 발가락까지 길이가 비슷하고 발가락이 짧은 발”이라며 “발끝으로 서야 하는 만큼 무게 중심이 발가락에 골고루 분산될수록 편하다”고 설명했다. 김주원 역시 발가락이 길고 둘째 발가락이 엄지발가락보다 긴 ‘부적합한 발’을 가졌다. 이 때문에 긴 발가락이 토슈즈에 눌리고 스치면서 생긴 굳은살이 가득하다. 스스로는 “개구리 발같이 끔찍하게 생겼다”고 말하지만, 피나는 노력을 드러내 주는 영광의 상처이자 수많은 사람들에게 발레의 감동을 선사하는 아름다운 발이다.

“나는 발이지요/고린내가 풍기는 발이지요/하루 종일 갑갑한 신발 속에서/무겁게 짓눌리며 일만 하는 발이지요/…/그러나 나는/모든 영광을 남에게 돌리고/어두컴컴한 뒷자리에서 말없이 사는/그런 발이지요.”(권오삼 ‘발’)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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