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임규진]입사시험 답안지 속의 천성산 해법

  • 입력 2005년 8월 15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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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 도롱뇽 소송은 경부고속철도 건설과 환경보전이 대립한 사례입니다. 귀하에게 결정권이 있다면 어떤 판단을 내리겠습니까.”

지난달 외환은행이 신입행원 입사시험에 낸 문제다. 은행원은 1원의 손익으로 기업의 생사(生死)를 판단하는 자본주의 첨병(尖兵)으로 불린다. 이런 일을 하겠다는 청년들은 어떤 해법을 내놓았을까.

대부분의 응시자는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상식에서 출발했다. ‘모든 선택에는 대가(代價)가 있고, 그 대가는 어떤 것을 얻기 위해 포기하는 무엇’이라는 경제학 기본원리가 적용된 것이다.

개발의 편익을 중시한 응시자들은 ‘도롱뇽을 살리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이 너무 많다’는 점을 강조했다. A 씨는 ‘경부(京釜)축은 한국 경제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도롱뇽 살리기의 기회비용은 국가물류비 3.2% 절감효과의 포기’라고 지적했다. B 씨는 ‘대다수 국민의 편의를 희생시킬 수 없다’고 썼다. 22분이나 길어지는 경부고속철도 운행시간, 6조 원의 공사비용 추가 등도 큰 손실이라는 것이었다.

환경보호론에 가까운 응시자들은 ‘터널공사가 가져올 자연 파괴’를 더 큰 문제로 보았다. C 씨는 ‘이미 투입된 수조 원의 돈이 아깝다고 해도 사라질 자연환경의 가치에 비할 수는 없다’고 했다. D 씨는 ‘인간의 이기심으로 수많은 동물이 멸종된 만큼 도롱뇽만이라도 그런 전철을 밟게 하지 말자’고 썼다.

그러나 C 씨와 D 씨는 ‘수조 원의 혈세(血稅)를 땅에 묻더라도, 기존의 법절차를 무시하더라도 단식(斷食) 같은 사실상의 폭력투쟁을 통해 도롱뇽을 구하자’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거꾸로 A 씨와 B 씨도 “도롱뇽이 사라지더라도 터널공사를 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이들은 터널공사가 가져올 이익을 도롱뇽 보호에 사용하거나, 도롱뇽을 살리는 터널공법을 개발하자는 등의 대안을 찾으려고 했다. ‘합리적 판단은 한계적으로 이뤄진다’는 경제원리를 지킨 셈이다.

하루 종일 일하거나, 24시간 내내 노는 사람은 없다. 8시간 일하는 데 추가로 1시간 더 할 것이냐 말 것이냐가 현실 속의 선택이라는 게 경제학의 가르침이다.

은행 응시자들의 답에서 보듯이 사회구성원의 견해는 극소수의 흑백(黑白)논리와 대다수의 중간좌표들로 구성돼 있다. 만일 “24시간 내내 놀자”는 목소리가 사회를 지배하면 어떻게 될까.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주관적 가치를 관철시키기 위해 포퓰리즘(인기영합) 수법을 동원하고, 막대한 비용을 국민에게 뒤집어씌우는 행태를 보인다. 이처럼 비(非)합리적인 행동은 의사결정과정의 폭력성과 비민주성을 불러온다. 광복 60주년을 맞은 한국 사회에서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뿌리째 흔들면서 오늘의 난국과 내일의 불안을 초래하는 극단주의자들이 있다.

외환은행은 7일 학력과 나이를 보지 않고 합리성과 능력을 겸비한 인재 100명을 선발했다고 밝혔다. 합격자 E 씨는 이렇게 썼다.

“경제성장과 환경보전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양자택일로 접근하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어려운 국가적 문제가 있을 때 이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이를 위해 사회구성원 모두는 법과 제도가 정한 절차를 지켜야 한다.”

임규진 논설위원 mhjh2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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