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 불법? 아리송한 통신비밀보호법

  • 입력 2005년 8월 10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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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통화에서 본인이 통화 당사자이고 상대방의 동의가 없는 경우 통신비밀보호법상 불법 여부를 놓고 법조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전화 통화에서 본인이 통화 당사자이고 상대방의 동의가 없는 경우 통신비밀보호법상 불법 여부를 놓고 법조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상대방 몰래 대화 내용을 녹음했다면 모두 불법인가요?”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불법 감청(도청) 파문이 확산되면서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다른 사람과의 대화 내용을 녹음하는 행위는 법적으로 어느 정도까지 허용되고, 어느 경우 처벌 받을까.》

▽자신이 녹음한 것은 합법=수개월째 채권자에게서 협박을 받은 A 씨는 지난달 말 자신을 찾아온 채권자의 협박과 욕설을 몰래 녹음했다.

A 씨는 이를 증거로 채권자를 경찰에 고소하려 했지만 상대방의 동의를 받지 않은 녹음이 불법이어서 증거로 활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한 법무법인의 온라인 사이트에 위법인지 아닌지를 문의한 A 씨는 “불법이 아니다”는 설명을 듣고서야 고소장을 냈다.

통비법 제3조 1항에는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청취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타인 간의 대화’라는 표현. 본인이 대화의 당사자라면 상대방의 동의 없이 녹취를 해도 불법이 아니다.

e메일이나 메신저 내용이 당사자에게 도착하기 전 제3자가 중간에서 가로챘다면 통비법 위반이다.

하지만 저장된 내용을 몰래 보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적용된다. 이 경우 처벌은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통비법 위반(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이 훨씬 무겁다.

최근 일부 기업이 종업원의 동의 없이 e메일이나 사내 메신저를 검열하는 행위는 명백한 불법이다.

잘못 배달된 우편물을 고의적으로 열어 봤다면 형법 제316조 비밀침해죄가 적용돼 처벌받는 것은 물론 통비법 위반으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이 법조계의 다수 의견이다.

정보통신부 장관의 허가 없이 도·감청 장비를 파는 사람은 물론 구입하는 사람도 통비법에 따라 처벌된다.

▽통비법은 미완성?=1999년 6월 충남 천안시 D아파트 상가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던 A 씨는 C 씨를 시켜 경쟁업체인 B미용실로 전화를 걸어 “귓불을 뚫어 주느냐”고 묻도록 했다.

“그렇다”고 대답하면 이를 녹음해 B미용실을 공중위생법 위반으로 고발하려 했다. A 씨는 목적을 이뤘지만 미용실로부터 통비법 위반으로 고소를 당했다.

1심과 2심은 A 씨가 대화의 당사자인 C 씨의 동의를 얻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2002년 10월 대법원은 제3자가 한쪽의 일방적 동의만을 얻었기 때문에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이 판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한쪽에선 타인 간의 대화로 보기 힘들다며 무죄를 주장하고 다른 쪽에선 대화 당사자라 하더라도 상대방의 동의 없이 녹음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법무법인 지평의 이은우(李殷雨) 변호사는 “독일이나 미국 등은 쌍방의 동의가 있어야 도청이 아닌 것으로 본다”며 “우리나라 역시 현행 통비법을 개정해 도청의 범위를 좀 더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통비법과 관련된 판례가 별로 없어 특정 사안에 대해 불법 여부를 확정짓기가 쉽지 않다”며 “‘X파일’ 사건 수사를 계기로 법 조항을 현실적이고 실효성 있게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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