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은 뽑았지만 벨 것이 있을지…검찰 X파일 내용수사 고심

  • 입력 2005년 8월 10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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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수 본부장 검찰 출두국가안전기획부 불법 감청 사건의 참고인 겸 피고발인 자격으로 9일 검찰에 소환된 이학수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신원건 기자
이학수 본부장 검찰 출두
국가안전기획부 불법 감청 사건의 참고인 겸 피고발인 자격으로 9일 검찰에 소환된 이학수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신원건 기자
“일단 칼을 뽑긴 뽑았는데 뭘 벨 수 있을지….”

검찰이 9일 이학수(李鶴洙) 삼성 구조조정본부장 소환을 시작으로 MBC가 보도한 도청 테이프인 이른바 ‘X파일’ 내용에 대한 수사에 사실상 착수했다.

표면적인 수사 명분은 문제의 테이프에 등장하는 삼성의 불법 자금 제공 의혹 등과 관련해 참여연대가 고발한 사건을 조사한다는 것.

하지만 검찰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도청 테이프 내용 수사에 대한 고민이 많다. 이유는 수사의 ‘전제’와 ‘결과’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도 불법 증거인 도청 자료의 수사 단서 활용 여부에 대한 결론이 나지 않았다.

불법 증거는 재판에서 증거로 삼을 수 없기 때문에 수사 단서로도 활용할 수 없다는 통설과 언론 보도 등 다른 단서를 근거로 수사 착수가 가능하다는 논리가 검찰 내부에서조차 팽팽히 맞서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사안은 건마다 법률적인 문제가 걸린다”고 토로했다. 해결해야 할 법리적인 문제가 그만큼 많고 복잡하다는 뜻.

법리적 난관이 해결된다고 해도 ‘증거를 통한 입증’이 더 큰 문제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관계자는 “설령 이 본부장 등이 양심고백을 한다고 해도 말뿐”이라며 “자료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남아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나마 8년 전인 1997년 일이어서 혐의가 입증된다고 해도 정치자금법(공소시효 3년) 위반과 같은 범죄는 공소시효가 완성돼 처벌이 어렵다.

참여연대가 고발한 대표적인 혐의인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및 횡령죄의 경우도 이 본부장이 이건희(李健熙) 회장의 개인 돈이라고 주장하면 기소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 본부장은 지난 불법 대선자금 수사 당시 삼성이 여야 후보 측에 제공한 380억여 원에 대해 이 같은 논리를 펴 이 회장의 검찰 소환을 차단한 전례가 있다.

따라서 검찰은 앞으로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도청 테이프 내용 수사를 둘러싼 정치권 및 여론의 향배를 주시하면서 법리 문제와 이 회장 등에 대한 관련자 소환 검토를 병행하는 ‘우보(牛步) 수사’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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