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윤병철]사장님, 문화예술에 돈 좀 쓰시죠

  • 입력 2005년 8월 5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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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문화예술의 시대다’라는 말이 실감난다. 큰 감흥을 주는 TV 드라마나 영화는 이웃나라에 수출되고 촬영 무대가 관광 명소로 떠오르기도 한다. 잘 디자인된 휴대전화나 전자제품, 자동차, 아파트 등이 명품으로 대접 받는 시대가 됐다. 산업사회로 대변되는 지난 세기에는 흔치 않았던 현상이다.

이런 일은 물질적 가치에 비중을 두었던 소비자가 소득 수준의 향상과 함께 정신적인 만족과 풍요를 가능케 하는 감성적 가치를 중시하게 되면서 나타나고 있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과 보급으로 지식과 정보가 가치를 창출하는 핵심 요소로 등장한 것도 문화예술의 시대를 꽃피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인간의 창의적 활동과 감성을 중시하는 이런 경향은 갈수록 강화되는 추세다. 특히 문화예술이 다른 산업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면서 경제와 국가 발전의 중요한 인프라로 등장한 것도 새로운 특징이다. 선진국이 문화산업을 향후 국가 경쟁력을 가늠하는 지표로 삼고 그 육성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흐름의 일환으로 국내 기업들은 1994년 ‘한국메세나협의회’를 결성해 사회 각계각층의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메세나(mecenat)’는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 활동이나 지원자를 뜻하는 말로 고대 로마제국의 정치가였던 가이우스 마에케나스가 당대 예술가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그들의 예술 창작 활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한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한국메세나협의회의 결성은 몇몇 기업인이 개별적으로 펼쳐 온 지원 활동을 좀 더 체계화해 보자는 시도였으나 아쉽게도 아직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회원사는 194개로 11년 전보다 27개사가 늘어나는 데 그쳤고, 지난해 지원금도 1710억 원에 불과하다.

다른 나라의 경우를 보자. 미국은 1967년부터 민간 경제인들이 조직적으로 메세나 운동을 전개해 세계 문화산업을 선도하고 있다. 이에 자극받은 프랑스와 영국이 1970년대 후반부터 문화산업 진흥 차원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1990년부터 체계적인 조직과 사회 각계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제는 문화 활동을 후원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일반 시민의 문화예술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데까지 발전해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각국의 이런 성과는 시민의 문화의식을 계발하여 각계각층이 자유롭게 메세나 운동을 펴 나갈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한 정부의 종합적이고 일관성 있는 지원책에 힘입은 바 크다. 우리 정부도 메세나 운동은 물론 환경 및 재난구호 등과 같은 공익 활동을 자유롭게 추진할 수 있도록 일본의 ‘특정 비영리 활동 촉진법’과 같은 특별법 제정을 통하여 메세나 조직의 자유로운 설립과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 정부의 지원 자금도 엄격한 심사와 기준에 따라 민간의 지원금과 매치되도록 운용한다면 실효성이 더욱 높을 것이다.

또 전체 사회 구성원들의 관심을 유발하려면 세제나 포상제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세금 감면 등으로 경제적인 보상을 하고 훈장이나 포상으로 사회적인 명예를 누리도록 한다면 많은 독지가가 나타날 것이다. 일반 시민들의 인식을 높이고 문화산업의 국내 시장 확충을 위해 문화예술 상품 소비자들에게 소득공제제도를 도입하고 정부가 문화상품을 구매하는 제도도 실시해 볼 만하다.

문화산업은 그 자체로는 경제성이 취약하기 때문에 소비 촉진 차원에서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여기에다 프랑스처럼 정부의 고위 인사나 사회 각계 지도자들이 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한 봉사 활동을 벌이고 문화상품 소비에도 시간을 할애하는 등 솔선수범한다면 메세나 활동은 더욱 촉진될 것이다.

우리는 지난날 산업사회에 뒤늦게 참여함으로써 뼈아픈 고통을 당했던 경험이 있다. 자본과 기술을 도입하고 공장을 세우는 등 압축적인 성장을 통해 이 문제를 풀어야 했다. 그러나 문화산업의 발전은 그 소비자인 국민의 수준이 높아져야 가능한 일이어서 속성 재배가 불가능하다. 문화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이 시대에 지난날의 고통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총합적인 노력을 현명하게 전개해야 한다.

윤병철 전 우리금융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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