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LG 국제만화페스티벌 대상

  • 입력 2005년 7월 29일 03시 08분


코멘트
▽극화 대상=‘돌고 돌고 돌고’ 남철

마을마다 들어서는 대형할인마트는 재래시장의 입지를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다. 이제 재래시장은 자가용이 없거나 한 번에 냉장고를 다 채울 만큼의 물건을 살 형편이 못 되는 서민들이 모이는 공간이다. 그곳에서는 매일 100, 200원을 놓고 벌이는 상인과 손님의 흥정이 있고, 고단한 삶을 지속하는 사람들의 절절한 몸짓들이 있다.

인생의 다양한 단면이 좌판처럼 널려 있는 재래시장을 배경으로 두 친구의 만남과 좌절을 겪는 한 노동자의 절규를 담아냈다. 일반적인 극화와는 달리 배경과 사람들을 컷으로 나누지 않고 마치 조망하듯 풀 숏(Full Shot)으로 잡은 화면 구성이 인상적이다. 등장인물들의 움직임과 말풍선들이 진짜 시장을 내려다보듯 실감 난다.

작가 남철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쳐도 허무를 피해갈 수 없는 인간 보편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고 말한다.

▽카툰 대상=‘실연’ 이아미

횡단보도 앞, 사람들이 서 있다. 어린이와 커플을 제외하고는 모두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다. 단 한 사람, 고개를 푹 숙인 남자의 손에서 미끄러진 휴대전화는 방금 인도에 떨어진 듯하다. 사람들 위로 말풍선이 구름처럼 떠오른다. 그 속에는 빨간 하트가 하나씩 들어 있다. 그러나 고개를 숙인 남자의 머리 위로는 말풍선이 빗방울처럼 떨어진다. 그곳에 빨간 하트는 보이지 않는다.

서 있는 사람들은 13명이다. 예수의 최후의 만찬에 모인 사람도 13명이었다. 그러나 예수를 배신한 유다와는 달리 머리 숙인 그 남자는 휴대전화 저쪽의 누군가에게, 아마도 자신이 가장 사랑했을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것 같다. 그것은 실연이다. 이아미의 ‘실연’에는 달콤한 대화 속에서 홀로 눈물을 떨구는 한 남성의 슬픔을 보며 웃음 짓게 만드는 힘이 있다.

▽캐릭터 대상=‘新십이지신’ 신성만 등

띠를 이루는 열두 동물은 우리 생활 속에 친근하게 녹아 있다. ‘신십이지신’ 캐릭터는 이 열두 동물을 이용한 각종 캐릭터가 이미 넘칠 만큼 존재한다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완성도 높은 조형성과 게임 및 동영상의 뛰어난 플롯으로 이 약점을 뛰어넘었다.

‘신십이지신’ 캐릭터는 열두 동물이 각각 행운을 갖고 있지만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그 능력이 봉인된 것으로 설정됐다. 행사장에서 열두 동물 인형을 경품으로 받아와 십이지신과 함께 봉인을 풀어내는 청년 실업자 영수, 그리고 십이지신의 부활을 방해하는 ‘사귀(死鬼)’와 ‘병귀(病鬼)’가 보조 캐릭터로 마련됐다.

열두 동물 캐릭터와 이 캐릭터들이 펼치는 모험은 2D와 3D 게임 및 애니메이션에 모두 쓰일 수 있도록 고안됐다는 것이 장점이다.

▽애니메이션대상= Space Paradise 이명하

주인인 ‘돼지 인간’에게 학대받는 한 로봇이 있다.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본 ‘우주 천국(Space Paradise)’을 동경하던 로봇은 그곳에 가기 위해 주인 몰래 집 옥상의 창고에서 로켓을 만들고 있다. 로봇은 우여곡절 끝에 완성한 로켓을 창고에 숨겨놓는다. 그러나 더 이상 로봇을 참지 못하게 된 주인은 로봇을 폐기처분하기 위한 도구가 있는 바로 그 창고로 향한다.

감정을 가진 로봇의 슬픈 운명을 다룬 듯한 ‘Space Paradise’는 사실 꿈에 대한 애니메이션이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어릴 적 꿈들은 나이를 먹고 세상을 알아 가면서 퇴색하고 끝내 하룻밤 꿈처럼 사라져 간다.

작가 이명하는 “꿈을 이루든 이루지 못하든, 그것이 옳은 것이든 그른 것이든 꿈을 간직한다는 것은 낭만적이다. 당신은 어릴 적 꿈을 기억하는가?”라고 관객들에게 묻는다.

■ 부문별 심사평

▽극화(박기준·남서울대 교수)=응모자의 정성이 담긴 작품 146편을 대하며 풍년을 기리는 농부의 심정으로 심사했다. 좋은 작품의 기본은 소재의 지혜로운 선택, 주제의 창조적인 해석, 그리고 설득력 있는 마무리다. 이번 수상작들은 최근 판타지 등이 주류를 이루는 극화의 흐름과는 달리 일상생활에 발붙인 소재를 감칠맛 나게 묘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영상기법이라는 독특한 표현 양식이 돋보였던 대상 ‘돌고 돌고 돌고’나, 우수상 ‘진실이를 아시나요’, 장려상 ‘사랑이라는 이유로…’ 등이 모두 그러했다. 또 다른 장려상 ‘활의 달인’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설화를 강력한 색감으로 묘사한 점이 높이 평가됐다.

▽카툰(사이로·청강문화산업대 교수)=카툰은 운율(韻律)의 예술이다. 내용과 표현이 잘 어우러져 소음이 아닌 화음을 이룰 때 독자는 즐거움을 맛본다. 대상 ‘실연’은 집단에서 소외된 개인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대비시켰다.우수상 ‘조지 부시’(프레디 피바쿠·콜롬비아)는 인물의 특정 부분의 특징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를 주관적으로 해석했다. 우수상 ‘무제’(룬탕리·중국)는 판사의 가발과 악어를 연결시켜 엄격함과 공정성의 의지를 상징한 발상이 독특했다. 장려상 ‘히틀러’(토미슬라브 오자니크·크로아티아)는 해적선의 해골 깃발에서 홀로코스트 이미지를 잡아냈다.

▽캐릭터(이창우·계원조형예술대 교수)=출품작의 수준이 계속 향상되고 있지만 ‘발언의 방식’보다는 테크니컬한 조형적 완성도의 성장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빈번하게 등장하는 ‘몬스터’ ‘외계인’ 등의 소재는 발상의 빈곤함을 드러냈고 전통적 소재에 대한 재해석은 오류와 편견이 많았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캐릭터를 통해 무엇을 왜 말하려 하는가라는 문제의식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대상 ‘신십이지신’은 일반적 소재인 열두 동물에 대한 재해석의 가능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인 우수상 ‘플래닛 큐몬’은 단순하면서 세련된 색상의 조합과 조형적 탁월함이 찬사를 받았다.

▽애니메이션(김재호·백석예술학교 교수)=140여 점의 응모작 중 본선에 진출한 20편을 청소년, 신인작가, 일반 부문으로 나눠 심사했다. 대상을 놓고 ‘Space Paradise’와 ‘春’이 경합을 벌였다. 아깝게 떨어진 ‘春’은 가족으로부터 소외된 할머니에게 찾아온 봄바람 같은 사랑의 감정을 깔끔한 캐릭터 디자인과 탄탄한 구성으로 표현했다. 본선에 오른 청소년과 신인들 중 특히 애니메이션을 전공으로 하는 학생들의 작품이 눈에 띄게 발전한 것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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