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연정제안’ 요지

  • 입력 2005년 7월 29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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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연정 제안’ 4탄은 원래 24일 발표될 예정이었다. 노 대통령은 22일 저녁 청와대에서 열린 당-정-청 수뇌부 회의에서 자신의 연정 구상을 소상히 밝혔다. 그러나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불법도청 X파일’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연기됐다가 이 사건이 진정 단계에 접어들자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휴가 복귀에 맞춰 28일 서신을 띄웠다. 4탄은 1∼3탄 서신과 맥은 통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조금 바뀌었다. 야당이 한결같이 연정 제의를 거부하자 이날 서신에서는 ‘한나라당 중심의 대연정’에 초점을 맞춰 제안했다. 다음은 연정 제안 4탄의 요지.》

▽연정 필요성과 형태=연정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리 정치의 여소야대 구조 때문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여소야대 구조로 국정을 운영하는 사례가 없다. 국정을 제대로 운영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연정을 한다면 열린우리당과 소수야당의 전부나 일부가 참여해 정권을 구성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가 될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 조합이 더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야당이 모두 손을 잡아 원내 과반수를 확보해 프랑스식 동거정부를 구성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을 포함한 야당과 손잡아 대연정을 만드는 것이다.

17대 총선 결과 동거정부 이야기는 꺼낼 필요가 없는 상황이 됐고 4·30 재·보선으로 여소야대가 되고 난 후에도 민주노동당의 노선으로 보아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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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중심의 대연정=열린우리당이 주도하고 한나라당이 참여하는 대연정이라면 한나라당이 응할 리 없을 것이다. 따라서 대연정이라면 당연히 한나라당이 주도하고 열린우리당이 참여하는 대연정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다른 야당도 함께 참여하는 대연정이 된다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이 연정은 대통령 권력하의 내각이 아니라 내각제 수준의 권력을 가지는 연정이라야 성립이 가능할 것이다.

이 제안은 두 차례의 권력 이양을 포함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권력을 열린우리당에 이양하고 동시에 열린우리당은 다시 이 권력을 한나라당에 이양하는 것이다. 권력을 이양하는 대신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지역구도를 제도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선거제도를 고치자는 것이다.

지역주의 극복은 저의 정치 생애를 건 목표이자 대통령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정권을 내놓고라도 반드시 성취해야 할 가치가 있는 일이다. 결코 무슨 이익을 취하자는 것이 아니다. 정권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어떤 속임수도 없다.

▽연정 비판론 반박=양당(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걸어온 역사와 노선이 서로 달라 연정을 하기가 부자연스럽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목표와 가치를 위해 그만한 차이는 뛰어넘어야 한다.

실제로 양당의 구성을 보면 그 내부에 다양한 이력을 가진 사람들을 포괄하고 있어 실제 노선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 오히려 연정을 하고 합동의총에서 정책토론을 하게 되면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 당을 넘어 협력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고 지금보다 소신과 노선에 따른 자유로운 의정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생이 어려운데 웬 정치구조 이야기냐는 비난이 있다. 이 논리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 정치가 잘돼야 경제도 잘될 수 있다. 정치가 잘되려면 정치제도도 잘돼야 한다. 그 정치제도를 고치고 바로잡자는 것이다.

초헌법적 또는 위헌적 발상이라는 비난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헌법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우리 헌법은 단순한 대통령제 헌법이 아니다. 정치적으로 합의가 되면 헌법에 위배됨이 없이 내각제에 가까운 권력 운용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국민이 만들어 준 권력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 하는 정치적 비판도 있다. 우리 정치와 미국 정치는 아주 다르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정권을 잡을 뿐 정당이 정권을 잡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정당이 정권을 잡는다고 생각해 당정협의도 하고 여야가 일사불란하게 행동통일을 한다. 마치 정권이 내각제처럼 운영되고 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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