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남선]親환경 기술로 EU벽 넘자

  • 입력 2005년 7월 26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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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중소기업 경영자들을 만나보면 “ISO14001이 없으면 어디 가서 명함을 내밀기 힘들다”는 말을 많이 한다. 대기업에 납품하거나 해외로 수출할 때 이것을 꼭 요구받는다는 것이다.

ISO14001이란 ‘국제환경경영 인증’으로 기업이 환경을 보호하면서 경영 활동을 할 수 있는 기준과 방법을 국제적으로 정한 것이다. 예전에는 ISO9000 시리즈로 불리는 품질 인증만으로 통했지만 ‘환경의 세기’ 21세기를 맞아 기업도 환경을 고려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게 됐다.

이렇게 ISO14001을 따지는 것은 유럽의 ‘폐전기전자제품(WEEE) 처리지침’이 다음 달 중순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휴대전화 컴퓨터 냉장고 TV 세탁기…. 매일 쏟아지는 수많은 전자제품 덕분에 인류의 삶은 윤택해졌지만 결국 지구자원 고갈과 환경오염으로 이어져 왔다. WEEE 처리지침은 지금껏 이 문제에 대해 손놓고 있던 기업(생산자)에 “대책을 주도적으로 마련하라”는 요구이다.

기업으로서 더욱 부담스러운 것은 이 같은 규제가 유럽을 넘어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도 이미 유럽보다 강화된 자체 기준을 마련해 대비하고 있고 후발 주자인 중국도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한국의 주요 수출국인 미국 역시 캘리포니아 주를 중심으로 환경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신광엔지니어링이라는 기업이 ISO14001을 따 화제가 됐다. 그 기업은 종업원이 10명도 안 되는 아주 작은 기업이었다. 알고 보니 산업자원부가 지원하는 ‘대기업과 협력업체의 상생경영 협력프로그램’ 덕분이었다.

선진국에 비해 환경기술이 뒤처진 한국의 현실에서 정부의 역할은 이처럼 매우 중요하다. 경쟁이 심하고 당장의 이익을 생각해야 하는 현실에서 중장기적인 판단이 필요한 환경 규제 대응에 중소기업이 알아서 대처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대기업의 환경 관련 기술과 경영기법을 중소 협력업체에 이전하게 하는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다. 협력업체의 환경 경영 능력이 높아지면 대기업은 양질의 부품을 공급받게 되고,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친환경 구매전략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오염물질이 발생한 뒤에 이를 처리하는 데 급급하는 ‘언 발에 오줌 누기’식 대증(對症)요법으로는 국제적 흐름에 대응하기 힘들다. 폐기물의 발생 자체를 원천적으로 줄이는 공정을 개발해 도입하고, 처음부터 재활용이 쉽도록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제품의 설계 단계에서부터 재활용을 염두에 두는 환경친화적인 제품설계(에코디자인)가 대표적인 기술이다. 제품의 구성요소를 가급적 단순화하고 표준화해서 재활용이 쉽게 하거나, 플라스틱이나 철 같은 소재는 재사용할 때 쉽게 분리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또 자동차 부품이나 복사기 카트리지처럼 조금만 손을 보면 새 것처럼 쓸 수 있는 중고품을 새 제품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재제조(Remanufacturing) 기술도 중요하다. 산자부와 국가청정생산지원센터는 이 같은 예방적 청정생산 체제를 보급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산업계는 유럽연합(EU) 환경규제 스케줄에 따라 내년 6월부터는 납 수은 카드뮴 등 6가지 유해 중금속에 대한 규제에도 대응해야 한다. 이 역시 대응능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중소기업이 문제다. 대기업만 잘 해서는 날로 높아만 가는 규제의 파고를 넘어설 수 없다.

환경 문제에 대한 대응에는 많은 자원과 시간이 들어간다. 정부와 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기업과 지방자치단체 등 관련자들이 힘을 모아 상생(相生)의 길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이다.

조남선 국가청정생산지원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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