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복거일]육체의 반역

  • 입력 2005년 7월 25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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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년에 우리 사회는 출산율의 붕괴를 겪었다. 그러나 충격적 변화는 고립된 현상이 아니라 여성들이 태어난 집단에서 나와 배우자의 집단으로 들어가는 여성 족외혼(族外婚)의 약화, 대가족의 붕괴, 여성들의 사회적 활동 증가와 경제적 독립, 피임의 보편화와 같은 연관된 변화들의 한 부분이다. 위에서 든 여러 변화들은 모두 나름대로 출산율 감소에 기여했다.

진화생물학의 정설에 따르면 생명의 기본 단위는 유전자들이며 생식은 본질적으로 유전자들의 전파를 위한 것이다. ‘이기적 유전자’라는 개념을 일상용어로 만든 리처드 도킨스의 표현대로, 개체들은 자신들이 지닌 유전자들을 퍼뜨리는 ‘수레’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개체들은 유전자들을 한껏 퍼뜨리기 위해 자식들을 되도록 많이 낳으려 애쓴다.

동물들이 뇌를 갖게 되자 개체에 대한 유전자의 지배는 간접적이 되었다. 특히 잘 발달된 뇌를 지닌 사람의 경우 자신을 의식하게 되었다. 자신의 의식은 사람의 행태를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이제 가장 소중한 존재는 유전자가 아니라 자신이었다. 즉, 사람은 유전자의 절대적 명령에서 부분적으로 자유롭게 되었다. 문화가 발전하자 사람은 점점 유전자의 명령을 거스르면서 자신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진화는 욕망의 추구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낳았다. 식욕이나 성욕과 같은 욕망들은 원래 유전자들의 전파를 돕기 위해 생겼고 쭉 그 목적을 위해 추구되었다. 하지만 사람이 자신을 의식하게 되자 욕망들의 추구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었다. 욕망의 충족이 자신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것을 추구할 충분한 이유가 된 것이다. 특히 성욕의 충족은 생식과 분리되어 추구되기 시작했다.

생존에 필요한 수준 이상으로 자원을 확보하면 사람들은 잉여 자원의 대부분을 자식들을 낳아 기르는 일이 아니라 자신들의 욕망들을 충족하는 데 쓴다. 그들은 유전자의 강력한 명령에 저항하는 것이다. 이런 ‘육체의 반역’이 결혼과 가족에서 진행된 일련의 변화를 부른 근본 요인이다.

육체적 욕망의 충족을 통해서 삶을 즐기는 일은 자식을 낳아 기르는 일과 경쟁적이고, 대체로 전자가 이긴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자원의 대부분을 삶을 즐기는 데 바친다.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일이 너무 비용이 많이 든다고 호소하는 현대의 젊은이들은 실은 자신들이 삶을 즐기는 데 드는 자원을 빼면 남는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을 지적하는 셈이다.

통념과는 달리 여기서 결정적 요소는 소득이 아니라 시간이다. 삶을 즐기려면 시간이 든다. 사회가 발전하면 소득은 계속 늘어나지만 시간은 그대로다. 게다가 삶을 즐기는 수단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므로 현대인은 잠을 줄이면서까지 자신들의 욕망들을 추구한다. 지금 젊은이들에게 결정적으로 부족한 자원은 시간이다.

불행하게도 삶을 즐기는 데 좋은 시기와 자식을 낳아 기르는 데 좋은 시기는 겹친다. 신체적으로 보면 임신의 최적기는 대체로 17세에서 27세까지라 하지만 그 시기에 젊은이들은 삶을 즐기거나 즐기기 위한 준비에 바쁘다.

출산을 장려하는 보조금이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떤 발랄한 현대 여성이 보조금을 받기 위해 어머니가 자기를 낳았던 나이에 아이를 낳겠다고 마음먹겠는가. 삶을 즐길 기회가 끊임없이 밀려와서 시간이 너무 부족한 판에. 그래서 현대 여성의 가임기는 실질적으로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출산율의 감소는 그런 사정의 반영일 따름이다. 이 사실은 또 하나 중요한 함의를 지녔다. 임신 최적기를 지나서 아이들을 갖는 관행은 태아들의 자질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 문제는 출산율의 감소보다도 오히려 큰 문제로 보인다.

물론 아이를 가진 여성에 대한 경제적 지원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출산의 유도보다는 임신과 육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돼야 옳다. 태아와 유아의 환경을 보다 낫게 만드는 일보다 더 중요한 투자는 없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특권 계층이 있다면 그것은 가임기의 여성일 터이다.

위에서 드러난 것처럼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논의의 맥락을 한껏 넓혀야 한다. 어떤 현상이 생물적·문화적 수준에서의 변화에 따른 것이라면 사회 정책의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논의는 대체로 부질없다.

복거일 소설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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