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강성철]구조로봇이 불끄는 시대

  • 입력 2005년 7월 23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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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경 예상치 못한 지진이 발생해 많은 건물이 붕괴됐다. 건물 안에는 수많은 희생자가 매몰돼 있다. 119 구조대원들이 출동했으나 진입이 쉽지 않아 붕괴된 건물 내부의 상황과 희생자 위치를 전혀 파악할 수 없는 상태. 게다가 2차 지진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뉴스에 구조대원들은 긴장한다. 바로 이때 날렵하게 생긴 로봇이 현장에 도착한다. 로봇이 붕괴된 건물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사람들의 위치를 신속하게 알려준다. 로봇이 무선으로 보내 온 현장 지도와 정확한 희생자 위치를 받은 구조대원은 신속하고 안전하게 희생자의 시신을 구출해 낸다.

미국 일본 등에서 구조 로봇을 개발하는 사람들이 가까운 미래에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시나리오다. 일본은 30년 이내에 1995년 고베 대지진보다 더 큰 지진피해가 동남해안 지방에서 일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이에 대비하기 위한 범국가 차원의 준비를 하고 있다. 당연히 재난구조 로봇 개발에도 많은 투자를 한다. 미국에서는 2001년 9·11테러 현장에 투입된 구조 로봇이 희생자 시신 6구를 찾아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현재 산업자원부 주관으로 화재 진압 및 인명구조 로봇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진 등 위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로봇이 희생자를 잘 찾아내려면 크게 세 가지 기능을 갖춰야 한다. 우선 험지 이동 기능이다. 때론 붕괴된 틈을 비집고 들어가야 하고, 계단이나 무른 지형과 같은 열악한 조건에서도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어야 한다. 지도 작성 및 희생자 위치 파악 기능도 필요하다. 거리 센서 등을 이용해 로봇이 현장 지도를 작성하고 탐지된 희생자 위치까지 지도상에 정확히 표시해 준다면 구조대원이 무척 고마워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희생자의 매몰 상황과 신체 상태를 알려 주는 기능이다. 피해자가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 등을 카메라, 온도 센서, 이산화탄소(CO₂) 센서 등을 이용해 로봇이 판단하는 것이다.

필자는 지난해 로보컵 US오픈에 이어 올해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로보컵 세계챔피언대회에 참가했다. 한국의 구조 로봇 ‘로스큐’가 구조 로봇 부문 2위를 차지한 이번 대회에서도 위에서 언급된 세 가지 기능이 뛰어난 로봇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결국 로봇이 사람을 직접 구조하는 게 아니라, 구조대원이 구조 작업을 잘하도록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로봇 스스로가 모든 걸 판단하고 행동하기에는 구조 작업이 너무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의 구조 로봇은 원격조종자가 조종한다. 사람처럼 지능이 있어 자율적으로 판단하며 작업을 완수하면 제일 좋겠지만 아주 먼 미래의 얘기다. 아직까지는 로봇의 지능, 즉 인식-추론-행동 수준이 너무 낮기 때문이다.

구조 로봇은 상품화하기에 좋은 아이템이다. 원격조종 방식이어서 높은 수준의 지능이 필요하지 않다. 또한 경비, 청소, 오락, 대화 등 다목적 기능을 요구하는 가정용 로봇에 비해 구조 로봇은 요구 기능이 분명하고 구체적이다. 물론 가정용 로봇에 비해 시장 규모가 작을 수 있으나 고부가가치 시장 형성이 가능하다고 본다. 구조 로봇이 실제 재난 현장에 투입돼 인명을 구조하는 데 기여한다면 그 사회적 파급 효과는 상당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여건상 지진보다는 화재 현장에서 불을 진압하고 인명을 구조하는 로봇을 개발하는 게 더욱 절실하다고 본다. 섭씨 1000도가 넘는 고온인 데다 연기가 자욱한 화재 현장에서 로봇이 어떻게 불길을 잡고, 인명을 찾을 수 있을까? 아직까지 이런 로봇은 세상에 없다. 우리가 먼저 도전해 화재 진압 로봇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기를 기대한다.

강성철 KIST 지능로봇연구센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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