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성 두산그룹 회장의 글 전문

  • 입력 2005년 7월 22일 16시 00분


코멘트
2만여 두산 임직원 여러분께 드리는 글.

도저히 일어나서는 안 될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그룹을 이끌어가는 수장으로서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에 대해서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지금 가장 걱정하는 것은 외부의 일이 아닙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진정 걱정하는 것은 사태에 대한 진위를 알지 못하는 임직원 여러분들의 동요와 혼란입니다. 임직원 여러분들께서 흔들리면 그 피해는 더욱 커지기 때문입니다. 이에 모든 사건의 전말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사태의 발단 – 박용오 회장의 두산산업개발 계열분리 요구

두산건설은 700%의 부채비율로 경영상황이 썩 좋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봄, 고려산업개발의 합병을 계기로 부채비율을 200% 대로 낮추는 한편, 적극적인 수주활동으로 경영상황이 개선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박용오 회장은 이전까지만 해도 두산건설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경영상황이 호전되자 건설을 바라보는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역삼동 서울사무소를 매각하고 논현동 두산빌딩으로 들어오려 했던 두산중공업의 입주도 극구 반대하였고, 필요도 없는 회장 사무실을 논현동 두산빌딩에 마련하였습니다.

특히 2년전부터는 두산산업개발 임직원들 사이에서 두산산업개발은 박용오 회장에게 계열 분리된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유포되고 있었으며, 지난해에는 박용오 회장이 직원들에게 두산산업개발의 계열분리 실현 가능성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박용오 회장이 두산산업개발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회사를 제대로 키워보겠다라는 이유가 아니라, 개인적인 사유 때문이었습니다.

두산의 경영원칙은 ‘공동경영 공동소유’

두산은 국내 最古의 기업으로서 박두병 초대회장이 돌아가신 지난 1973년 이후 박용곤 명예회장님 등 3세 경영인들이 경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두산은 국내 여타의 기업들과는 달리 형제간의 재산 다툼 없이 ‘Business Family’로서 모범적인 경영을 통해 매출 11조원, 자산규모 12조원의 재계 10위의 건실한 기업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이처럼 109년의 유구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재산분쟁 없는 기업으로 커왔던 것은 선친이 남기신 ‘공동소유와 공동경영’이라는 원칙을 모든 가족들이 소중히 지켜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1996년 12월, 박용곤 당시 그룹 회장이 동생인 박용오 회장에게 그룹 회장직을 이양하고, 이번 박용성 두산중공업에게 그룹회장을 이양한 것도 이러한 그룹의 전통과 원칙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명예회장 박용오 회장에게 명예로운 은퇴 요구

박용곤 명예회장께서는 박용오 회장과 직계 가족들이 선친의 ‘공동소유 공동경영’에 위배되고, 또한 두산그룹 전체의 발전에 저해되는 두산산업개발 분리 추진을 감지했습니다. 명예회장은 금년 초부터 그룹 회장 이양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봄부터 박용오 회장에게 ‘박 회장도 취임 10년 정도가 되었고 나이도 은퇴할 시기가 되었으니 금년 말로 회장직에서 은퇴하라’고 말씀하시게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박용오 회장은 이에 반발, 구조조정으로 회사 가치가 상승한 두산산업개발의 계열 분리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자식의 개인사업으로 많은 지분을 매각하여 두산산업개발 지분율이 0.7% 밖에 되지 않은 박용오 회장 가족이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가치가 상승된 상장회사인 두산산업개발을 자신의 가족 소유의 이름으로 만들어달라고 하는 터무니 없는 요구였습니다.

이는 가족 중 가장 낮은 0.7%의 지분율로 보아도 있을 수 없는 사안일 뿐만 아니라 선친의 ‘공동소유, 공동경영’의 확고한 원칙에도 반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그룹 전체의 이익에도 배치되는 것이므로 허용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명예회장과 가족들은 그 동안 수 차례의 대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되지 못하자 박용곤 명예회장은 지난 5월에 가족회의를 소집하였으며, 가족회의 결과 계열분리는 불가하다는 결론과 함께 회장 이양을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회장 이양 결정되자 터무니없는 이야기로 협박

박용오 회장은 본인이 두산의 전통방식인 가족회의를 통해 회장직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가족회의의 결정에 대해서는 따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본인과 동생인 박용만 부회장이 명예회장님을 사주해 자신을 쫓아낸다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퍼뜨렸습니다.

특히, 박용오 회장은 말도 안되는 내용을 폭로하겠다며 협박을 해왔으며, 급기야는 21일, 도박 등으로 도덕성이 의심되었으나 개인적 친분에 의해 데리고 있던 모 상무를 앞세워 ‘비자금을 모았다, 자금을 해외로 빼돌렸다’라는 터무니없고 음해성이 농후한 근거 없는 투서를 검찰, 언론사에 제출했습니다.

21일에는 기자회견까지 자청해 본인과 박용만 부회장이 엄청난 비리를 저지르고도 반성은 커녕, 비리가 적발되자 공모하여 자신을 회장직에서 축출하려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것도 모자라 형제간의 의를 생각하여 지금까지 참아왔으나 회사가 부실화되는 것을 보다 못해 우량기업인 두산산업개발만이라도 독자 경영을 건의한 것이라며 거짓을 일삼았습니다. ‘두산산업개발의 독자경영’, 이 말은 박용오 회장이 그동안 주장해 왔던 두산산업개발의 계열분리 의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에 불과합니다.

법적 책임을 질 일이 있다면 책임질 터

이러한 박용오 회장의 행동은 자신의 의도가 통하지 않자 그동안 임직원들이 힘겹게 쌓아 온 두산그룹을 흠집 내겠다는 물귀신 작전이라고 밖에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조사하면 금방 탄로가 날 거짓말들입니다.

저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국제상업회의소 회장, IOC 위원 등 대내외 적으로 60여개의 직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박용오 회장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런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면 내 어찌 이런 자리를 가지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제 양심상 그럴 수는 없습니다.

확신하건데 박용오 회장이 주장하는 그런 비리는 없습니다. 만약 검찰이 조사를 한다면, 조사에 떳떳이 응할 것입니다.

박용오 회장, ㈜두산, ㈜두산산업개발 대표이사 회장직 퇴출

금일, 9시와 10시 두산산업개발㈜와 ㈜두산은 각각 이사회를 열어 박용오 대표이사 회장의 해임 안건을 상정하여 해임을 가결했습니다.

수십 년간을 동고동락했던 형님이시지만 안되는 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흔들림 없이 글로벌 두산 위해 매진 당부

지난 10여년간 구조조정을 통해 본격적인 출발을 하려는 마당에 이번 사태는 두산의 이미지에 큰 타격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우리 두산이 회장이라 하더라도 도덕적 해이에는 단호하게 대처함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원칙은 두산이 존재하는 한 계속될 것입니다.

친애하는 두산 임직원 여러분! 부디 이번 사태에 흔들리지 마시고, 글로벌 두산으로의 도약을 위해 본업에 충실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사태는 제가 책임지고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2005. 7. 22

두산그룹 회장 박용성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