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유럽일주/0606~11] "왜 가는 곳마다 비가 오는 걸까요?"

  • 입력 2005년 7월 21일 15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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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유럽 여행(6월6일) : 이동구간 : Benesov-Telc 이동거리 : 90km

평소 때보다 1시간을 일찍 출발했지만 언덕이라 속도가 나질 않는다. 독일에서 만난 산보다는 훨씬 양호하지만 그래도 언덕 올라가기는 자전거의 최대 걸림돌이다. 물론 언덕 다음에 내리막이 있긴 하지만 한참을 올라간 언덕을 단 몇 초면 다 내려오니 올라간 보람을 느끼질 못한다.

더구나 오늘은 날씨가 무척 나쁘다. 아침부터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잠시 비를 피하면 곧 햇빛이 비추더니 다시 출발하면 잠시 후 어김없이 비가 오니 이거 참 어찌 할 줄을 모르겠다. 아무래도 우리가 먹구름을 따라 이동하는 것 같다.

체코의 지방으로 오면서 프라하의 모습과 너무나도 대조적인 모습에 조금 놀란다. 물론 수도와 지방의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아직 지방에선 자본주의 국가의 모습을 찾기가 무척 힘들다. 사람들도 낯선 이방인에 대해 조금 경계하는 눈치다. 비가 와서 더 그러겠지만 무척 어둡고 사람들의 모습에 그다지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자전거로 유럽일주' 사진
'자전거로 유럽일주' 동영상

비도 많이 오고 바람도 불어 무척 춥다. 여행을 하며 이런 날씨가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빗속을 무리하게 강행해서 가는 것도 그리 현명한 방법은 아니다.

더구나 이런 상태로 캠핑을 하면 감기에 걸릴 것 같아 근처에 있는 호텔에 가보지만 체코 물가에 맞지 않게 가격이 무척 비싸다. 그냥 무리해서 좋은 호텔에 머물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굳게 마음을 먹고 다시 캠핑장으로 출발. 항상 여행을 하며 좋은 잠자리와 좋은 음식 또 편한 여행이 그리워지기도 하지만 그런 여행을 할 경우 왠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맘이 편하질 않다. 그냥 더 힘들고 조금 더 고생스럽더라도 지금의 여행이 젊은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여행인 것 같다. 가장 힘들 때의 나의 모습과 그런 상황 속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기 때문에.

2시간쯤 더 가서 어렵게 캠핑장을 찾았다. 고생한 보람이 있는지 6유로의 싼 값에 무척이나 시설도 좋은 캠핑장. 조금 전 호텔에서 자지 않은 것이 무척 잘 한 것 같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인생까지 거론하는 것이 비약적이긴 하지만 이번 여행 특히 자전거를 타며 많은 것을 배운다. 노력 한만큼 갈 수 있다는 것, 또 포기 할 만큼 힘든 상황을 버텨내면 보다 나은 상황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모든 여행에서 누구나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겠지만 우리에게 이번 자전거 여행은 보다 성숙하고 강해질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다.

자전거 유럽 여행(6월7일) : 이동거리 : 0km

어젯밤 조금 더 따뜻하게 잔다고 텐트에서 나와 화장실 앞에 있는 공간에 침낭을 펴고 잤는데 완전 잘못했다. 난방도 안 들어오는 공간은 바닥과 벽에서 나오는 한기에 지금껏 유럽에서 잔 곳 중 가장 추웠다. 다들 침낭에서 나오는 모습이 너무 불쌍해 보인다.

분명 누가 먼저 말하지 않았지만 오늘 하루는 그냥 푹 쉬기로 결정, 정리하던 짐을 다시 풀어 놓았다. 무척 싼 캠핑장의 가격도 가격이지만 어제 이미 추위를 경험했기에 오늘은 그냥 밀린 엽서와 자전거 정비도 하며 하루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모처럼의 휴식.

그 동안 여유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몸이 많이 지쳤던 것이 사실이다.

오늘의 휴식이 남은 여행의 활력소가 될 것 같다.

자전거 유럽 여행(6월8일) : Telc-Znojmo 이동거리 : 97km

프라하에서의 하루를 제외하고 체코의 날씨가 정신 못 차리게 춥다.

하루 푹 쉬고 날씨가 좋아지길 기대했지만 오늘 날씨는 어제보다 한층 더 춥다.

쉰다고는 했지만 밤새 추위에 떨었더니 몸이 오히려 더 피곤하다.

차라리 비라도 많이 오면 그냥 체념하고 하루 더 쉬겠지만 비도 안 오고 먹구름만 잔뜩 끼었으니 어쩔 수 없이 지친 몸을 다독인다.

가지고 있는 긴 옷을 껴입고 자전거 패달을 굴린다.

늦어도 내일까지는 오스트리아 빈에 들어가야 하기에 오늘은 최소한 국경 근처까지는 가야한다. 가만히 있으면 손이 시릴 정도로 춥기 때문에 최대한 몸을 크게 움직여 자전거를 탄다.

체코에 들어와 다들 많이 힘들어한다. 그간 쌓인 피로도 피로지만 체코의 이상적으로 추운 날씨도 한 몫을 한다. 날씨라도 따뜻하면 보다 다양한 체코의 모습을 경험하겠지만 자전거 타고 캠핑장 찾아 들어가기 바쁘니 여행의 즐거움이 부족하다.

이제 내일이면 이곳 체코를 벗어나 오스트리아 수도 빈으로 들어간다.

체코에 대한 아쉬움과 또 새롭게 경험하는 오스트리아에 대한 기대로 약간은 복잡한 심정이다. 내가 느끼는 주관적인 판단이 아닌 가이드북과 같은 외적인 요인으로 오스트리아에 보다 더 큰 기대를 하고 체코 여행에 조금은 소홀했던 것은 아닌지.

외적인 것으로 그 전부를 판단하는 지금 우리의 모습.

어떠한 상황이든 즐길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여유와 아량을 배우자.

자전거 유럽 여행 (6월9일) : Znojmo-Wien(in Austria) 이동거리 : 120km

모처럼 아침에 부지런을 떨었다. 다들 오늘 안에 오스트리아 빈에 들어가길 원하기도 했지만 그 동안 만족할 만큼 많은 거리를 이동한적이 별로 없어 각오도 새롭게 할 겸 아침 일찍 캠핑장을 나선다.

날씨도 모처럼 좋고 오늘은 길 상태도 무척 좋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우리나라 톨게이트 같은 곳에서 여권 검사를 한다. 체코가 아직 EU 가입국가도 아니다 보니 형식적이긴 하지만 검사를 한다. 재미있게도 여권검사를 하는 남자가

오늘 아침 출근길에 우리를 보고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우리가 신기한지 이것저것 여행에 대해 물어본다. 하긴 커다란 태극기를 자전거 가방에 달고 달리는 우리가 평범하진 않을 것이다.

따로 쉬는 시간을 갖지 않고 부지런히 달려온 탓에 2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 들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빈을 감상하기도 전에 비가 또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정말 우리의 여행을 시샘을 하는 것인지 우리가 유명한 도시에 들어가기만 하면 비가 온다.

지난 프랑크푸르트도 그랬고 체코 프라하에 들어왔을 때도 비가 억수로 오더니 오늘도 어김없이 비가 온다. 내리는 비를 말릴 수도 없는 것이고 비를 피해갈 수도 없으니 환장할 노릇이다. 다들 기대가 컸던 탓인지 의기소침해 한다.

부디 내일은 해가 뜨길 기대해본다.

자전거 유럽 여행(6월10일) : '빈' 관광

문화예술의 고장 빈.

조금 과장을 더해 빈을 돌아다니는 사람의 반은 관광객이다.

모두가 한 손엔 안내책자를 다른 한 손엔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닌다.

유명 관광지를 보물로 따질 경우 빈은 보물이 가득한 보물섬이다.

전날의 비로 홀딱 젖은 짐을 텐트에 대충 넣어두고 서둘러 빈 관광에 나섰다.

다들 보고 싶은 것이 많아서인지 무척이나 의욕적이다.

오늘은 평소와 달리 따로 다니며 관광을 하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무척이나 보고 싶은 것이 많기도 하고 다들 보고 싶은 것이 다르기도 해서 그냥 오늘만큼은 알아서 돌아다니기로 했다. 대신 최대한 많은 자료를 가져와 서로에게 설명해 주기로 약속하고.

무엇보다도 가장 보고 싶었던 것은 그 유명한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이 유명한 그림을 보기 위해 서둘러 그림이 소장되어 있는 '벨베데레' 궁전으로 향했다.

특별히 그림에 조예가 깊은 것은 아니지만 그저 이 유명한 그림을 직접 보고 싶었을 뿐.

벨베데레 궁전을 이리저리 뒤지다 찾아낸 클림트의 '키스'.

그 당시의 기분은 연예인을 만난 기분이랄까.

그저 한 남녀의 애틋한 키스의 장면을 그린 이 그림은 조심스레 여자의 얼굴을 만지며 살며시 키스를 하는 남자의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 깊다. 더욱이 정신이 나간 듯 황홀한 표정으로 남자의 입술을 받아드리는 여자의 모습까지. 모든 사람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키스의 모습을 그림으로 정의 내린 클림트이기에 이리 찬사를 받나 보다.

다음으로 네덜란드의 거장 램브란트를 비롯한 여러 명화가 소장되어 있는 미술사 박물관으로 향했다. 다른 곳에 비해 다소 비싼 입장료이지만 이렇게 많은 명화를 한번에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그리 아까운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아쉬웠던 것은 사전지식의 부족으로 그 많은 명화를 그저 학예회 감상하듯 했다는 사실이다. 그 많은 명화 중 고작 아는 그림이라고는 다섯 손가락이 넘질 않으니 가끔 아는 그림이 나오면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제대로 이 많은 그림을 감상하려면 며칠이 걸려도 부족할 것 같다.

아쉬움과 부끄러움을 뒤로 하고 미술사 박물관을 나왔다.

다들 빈에 있는 유명 명소를 둘러보기에 시간이 부족한 모양이다.

모두의 얼굴에서 아쉬움이 느껴진다.

애초에 빈에 들어오면서 음악의 고장 빈에서 무슨 내용인지 모르더라도 무조건 오페라 구경을 하기로 약속을 했었다. 지정석의 경우 무척 비싸지만 입석의 경우 가격이 많이 저렴하기 때문에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오늘 짧았던 시간에 대한 아쉬움을 오페라 관람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국립 오페라 극장으로 들어갔다. 우리 외에도 입석표를 구입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줄 서 있었다.

한 가지 불안한 것은 우리의 옷차림이 반바지라는 사실.

최대한 반바지를 내려 입어 보지만 가뜩이나 시커멓게 탄 얼굴에 차림까지 이 모양이니 무사히 통과할 리가 없다.

최대한 모른 척하며 버텨보지만 입구에서 들어 간지 얼마 안돼 바로 관리인에게 제지를 당한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그저 옷차림만으로 제지를 당했다는 사실이 무척 서운하다.

아무리 명성이 높은 곳이라지만 오페라를 보고 싶은 마음이 중요하지 옷차림은 겉치레일 뿐인데.

그냥 조용히 오페라극장을 나와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오늘의 아쉬움은 다음 목적지인 짤츠부르크에서 달래야 할 것 같다.

자전거 유럽 여행(6월11일) : 이동구간 : Wien-Melk 이동거리 : 88km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자전거가 속을 썩이면 버릴 수도 없고 미칠 노릇이다.

얼마 전까지 원제 자전거가 속을 썩이더니 오늘 아침에 내 자전거 짐받이가 부러지면서 속을 썩인다. 며칠 전부터 삐걱삐걱 소리가 나며 불안하더니 오늘 드디어 부러지는 사고가 벌어졌다. 줄인다고는 했지만 짐이 많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그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부러졌나 보다. 짐을 과감히 버리는 결단이 필요한 때다.

부러진 부분을 대충 연결하고 다행히 근처에 자전거 가게가 있어 30유로의 거금을 들여 짐받이를 새것으로 교체했다. 남들이 생각할 때 자전거 여행을 하면 여행경비가 많이 들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데 한번 수리하는데 들어가는 돈을 따지고 보면 결코 적지 않은 거금이 들어간다. 아무래도 계획에 없던 돈이 들어가다 보니 아까움도 두 배가 된다.

자전거를 수리하느라 출발이 많이 늦어졌다.

이제 문제 생길 것도 없고 열심히 달리기만 하면 되는 순간.

이번엔 동원이 자전거의 스포크가 두 개나 부러진다. 누가 친구 아니랄까봐 아주 사이좋게 하나씩 말썽을 일으킨다. 스포크가 하나 부러지면 바퀴에 무게가 균형적으로 주어지지가 않아 연쇄적으로 부러지는 꽤나 심각한 문제이다. 지금껏 아무 사고 없는 자전거를 무척 자랑스러워하던 동원이었는데 그 충격이 무척 큰 것 같다. 짐받이에 싣던 가방을 등에 메고 가는 동원이의 모습이 무척 힘겨워 보인다.

모두 파이팅을 외치며 무사히 목적지까지 도착했다.

무엇보다도 오늘 저녁은 유럽 와서 처음으로 찌개를 해먹기로 한 날이기 때문에 열심히 달려왔다. 지금껏 아침 점심은 빵으로 저녁 메뉴로는 고기 아니면 스파게티였기 때문에 메뉴를 쇄신할 필요를 느낀 원제가 오늘 찌개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얼큰 양송이 찌개'

기대 이상의 맛이다. 재료라 해봐야 양송이와 양파, 고기, 고추장이 전부였는데 기적(?)적으로 얼큰한 찌개의 맛을 낸다. 요리를 잘하는 줄은 알았지만 부실한 재료를 가지고 이런 요리를 하는 원제가 무척 대단해 보인다. 유럽에 와서 또 하나의 저녁메뉴가 생기는 순간이다.

여행이 끝나는 날까지 이곳 유럽에서 우리가 해먹는 메뉴가 얼마나 많아질지 무척 궁금하다.

오늘은 자전거 때문에 유난히 고생을 했다. 여행을 하며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그저 미리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아니면 이런 사고까지도 여행의 일부로 받아드리는 넉넉한 여유를 가지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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