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514>卷六.동트기 전

  • 입력 2005년 7월 20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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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과인은 이제 팽월을 뒤쫓는 척 대량(大梁)으로 갈 것이니, 계포도 남은 대군을 이끌고 대량으로 오라 이르라. 대낮에 기치를 앞세우고 보무(步武)를 당당히 하여 행군하면, 팽월은 감히 맞설 엄두를 내지 못하고 더욱 멀리 달아날 것이다. 대량에 이르면 그곳에 가만히 머물러 대군을 정비하고 과인의 명을 기다리라. 과인이 따로 전령을 보낼 것이니, 그때는 또 그대로 따르면 된다.”

그래 놓고 패왕은 그날로 군사를 움직여 대량으로 달려갔다. 대량을 근거 삼아 어떻게 뻗대 보려던 팽월은 패왕이 그같이 재빠르게 뒤쫓아 오자 덜컥 겁이 났다. 무시무시한 패왕의 칼끝부터 피해 놓고 보자는 심사로 다시 북쪽 하수(河水)가로 달아났다.

팽월이 북쪽으로 멀리 달아났다는 말을 들은 패왕은 갑자기 군사를 서쪽으로 돌려 양적(陽翟)으로 향했다. 용저가 알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바로 형양으로 달려가지 않으십니까? 종리매 장군은 사람을 보내 형양으로 불러들여도 되지 않습니까?”

“여기서 바로 형양으로 가려면 번쾌가 지키는 광무(廣武) 산성을 지나야 한다. 그리 되면 적지 않은 우리 군사가 다쳐야 할 뿐만 아니라, 싸움에 시일을 끌어 과인이 다시 오고 있음을 형양과 성고에 미리 알리게 된다. 형양과 성고가 지킬 채비를 더욱 굳건히 하여 과인에게 죽기로 맞서는 것도 고약하거니와, 겁 많은 유방이 지난번처럼 몰래 달아나기라도 한다면 과인이 이렇게 달려온 보람을 어디서 찾겠느냐? 그보다는 차라리 길을 좀 돌더라도 양적으로 가서 종리매와 함께 갑자기 형양으로 쳐 올라가는 게 낫다.”

패왕이 그렇게 대답하고는 다시 계포에게도 사람을 보내 그 뜻을 전했다.

‘대량에 이르거든 굳이 광무로 나아갈 것 없이 길을 양적으로 잡도록 하라. 행군의 빠르기를 곱절로 하면 사흘 뒤에는 형양에 이르러 과인의 명을 따를 수 있을 것이다.’

대량에서 양적까지는 200리 남짓이었다. 늦여름(계하·季夏)이라 불리는 유월이지만 초순이라 그런지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렸다. 그 불볕 속을 밤낮없이 달려간 패왕의 군사들은 이틀 만에 양적에 이르렀다.

패왕이 사람을 보내 알아보니 종리매는 양적 성안에 없었다. 이에 성 밖에 군사를 멈추고 부근 백성들에게 물어 종리매의 군사들이 간 곳을 알아보고 있는데, 갑자기 높은 데서 망을 보던 군사가 달려와 알렸다.

“동쪽 골짜기에서 한 갈래 군사가 나타나 이리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 말에 놀란 패왕이 군사들에게 싸울 채비를 시키는 한편 자신도 철극(鐵戟)을 잡고 말 위에 올랐다. 그때 다시 망보기가 소리쳤다.

“달려오는 것은 우리 초나라 군사들 같습니다. 기치와 복색이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종리매의 군사들이겠구나.”

패왕이 그러면서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그 군사들은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거리로 접어들었다. 앞장서 터벅거리며 말을 몰아오고 있는 것은 틀림없이 종리매였다. 전포와 갑주 위로 먼지가 두껍게 앉아 온통 누른 옷으로만 보였다. 곁에서 따르는 부장들도 고단하고 지쳐 보이기가 그런 종리매에 못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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