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엽]盧대통령과 김영세의 혁신

  • 입력 2005년 7월 1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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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산업디자이너 김영세(이노디자인 대표) 씨가 저서 ‘이노베이터’에서 “디자인은 이노베이션(혁신)이며 무언가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이라고 말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두고 있는 그는 빌 게이츠가 디지털 라이프 시대를 주도할 제품으로 평가한 MP3 플레이어 ‘아이리버 H10’을 디자인했다. 그는 ‘디자인 구루(guru·지도자)’로 불린다.

그는 15일 출판 기념 북세미나에서 “이노베이터(혁신가)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며 “이노베이션 정신을 한국에 확산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디자인을 39가지로 정의했다.

“잘된 디자인만큼 멋진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없다.” “소비자를 감동시키는 논리를 가져라.”

그의 강의를 듣는 동안 ‘혁신’이라는 단어가 머리에서 내내 맴돌았다. 김 대표의 이노베이션과 노무현 대통령의 혁신이 대비됐기 때문이다. 김 대표의 이노베이션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데 비해 노 대통령의 혁신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았다. 왜일까?

노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혁신을 가장 강조해 왔다. 그는 “아무 때든 대통령 만나는 사람이 실세다. 혁신 보고한다면 아무리 바빠도 벌떡 일어나 보고 받는다(정부혁신추진토론회 2004년 7월)”고 말하기도 했다. 정부 주관의 토론회나 위원회의 힘을 평가하는 잣대가 ‘혁신’ 두 글자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청와대 홈페이지의 대통령 말씀록 중 혁신 관련 발언을 보면, 노 대통령의 혁신은 김 대표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혁신은 끊임없이 문제를 발굴하고 대안을 찾아 시정해 나가는 것.” “내 희망은 아래로부터 큰 변화가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낡은 생각은 버려야 한다.”

문제는 노 대통령의 혁신이 국민과 잘 소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대표가 “디자인은 소통”이라고 말한 것처럼 소통되지 않는 혁신은 가치가 없다.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대통령의 말을 누구나 접할 만큼 혁신의 성과도 있다. 그러나 최근 사례로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를 보자. 이 위원회는 “서울대 입시안 때문에 2008학년도 대입제도 개선 취지가 퇴색할 우려가 있다”고 보고했고 대통령이 이를 “나쁜 뉴스”라고 하자마자 열린우리당이 일사불란하게 서울대를 비난했다. 서울대가 물러서지 않자 교육인적자원부는 어정쩡한 논술고사 사후 심의제를 내놨다.

이런 논란은 아무리 봐도 혁신 과정으로 비치지 않는다. 더구나 서울대는 세계 일류를 향해 달려도 한참 달려야 한다. 최근 노 대통령의 강의로 끝난 언론사 편집·보도국장과의 대화도 마찬가지다. 이 밖에 지난해 개혁을 앞세운 4개 법안이 혼란 끝에 ‘신문법’만 날림으로 통과되는 등 혁신 불통(不通)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다.

김 대표는 20여 년 경험 끝에 디자인은 기술이나 상술이 아니고 ‘인술(人術)’이라는 점을 깨달았다고 한다. 온갖 기술과 마케팅 능력에 앞서 고객을 감동시키는 마술이 디자인이요 혁신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혁신이 혼란을 낳는 이유는 인술이 없기 때문 아닐까. 혁신이 소통되지 않는다면, 그것을 ‘정술(政術·정치적 기술)’로만 구사한 때문은 아닌지 짚어볼 일이다. 소비자 감동이나 국민 감동은 매한가지다.

허엽 위크엔드 팀장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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