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영섭의 세상속으로]동사무소에서…

  • 입력 2005년 7월 18일 03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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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의 아내, 두 아이의 엄마, 맞벌이 주부….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 어떤 것일까. 최근 임상심리학박사 학위를 받은 영화평론가 심영섭(38) 씨의 생활칼럼 ‘심영섭의 세상 속으로’를 연재한다.》

동사무소에 갔다. 주민등록등본도 한 열 장씩 떼어 한 장 한 장 쓰면 좋으련만, 꼭 일이 닥쳐야 동사무소에 간다. 오늘따라 350원을 내고 뗀 등본을 유심히 보았다. 거의 항상 늘 신경이 쓰이는 것은 우리 애들 성이 다르다는 것이다(우리 가족은 복합가족으로 살아가고 있다). 겸임교수 지원을 위해 학교에 낼 건데, 젠장 재혼한 사실이 또 금방 학교에 알려질 것만 같다. 아니 벌써 다들 알고 있나?

약간의 피해의식을 다독이며, 다시 한번 등본을 살펴본다. 오늘따라 평소 애들 성이 다르다는 ‘도둑이 제 발 저린 사연’ 때문에 한번도 볼 수 없었던 다른 점이 눈에 비친다. 분명 내 주민등록증을 내고 내가 등본을 뗀 것인데 왜 남편 이름 앞에 본인이라고 써 있을까? 호기심 반 오기 반으로 애꿎은 동사무소 직원을 잡고 늘어진다.

“이 등본 말이에요. 제가 본인으로 주민등록증을 내고 뗐는데, 왜 남편이 본인인가요?”

단 한번도 그런 질문을 받은 적이 없는지 담당 여직원도 등본을 열심히 들여다본다. 한참 지나 그녀가 빙그레 웃는다.

“여기의 본인은 그 본인이 아닙니다.”

“예?”

“여기 보세요. 세대주와의 관계란이 있지요. 이 난은 세대주와의 관계에 대해 써 있는 거예요. 세대주가 아저씨니까, 아저씨가 본인이죠.”

자세히 보니까 그렇다. 등본에는 등본을 떼는 사람 중심이 아니라, 세대주가 중심으로 관계가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아. 그렇구나. 쪽 팔린다. 왜 나는 이렇게 사소한 것에서 발목이 잡힐까?

그러나 마음의 뿌리 깊숙한 곳에서 다른 외침이 울려 나온다. ‘글쎄 그게 사소한 거냐고요? 학기 초만 되면 초등학생인 큰애 가정통신란에 동생 성이 다르다고 쓸까 말까 고민하는 게 사소한 거냐고요? 솔직히 동네 병원에 가서 건강보험증만 한 번 보여줘도 가족관계를 다 알아채게 만드는 이 제도가 사소한 일이냐고요? 누구누구 엄마로 평생 살아가다 등본 하나에도 누군가의 처로 남아 있는 현실이 사소한 거냐고요?’

문득 호주의 철학자 피터 싱어가 생각난다. 그는 그 사소함에 대한 실천의 열정 때문에 동물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반드시 ‘동물’이라고 쓰지 않고 ‘사람이 아닌 동물’이란 표현을 쓴다고 했다. 또한 ‘사람’을 가리킬 때도 ‘그(he)’라고 쓰지 않고 언제나 ‘그녀(she)’라고 쓴단다.

‘사람, 그녀는 사랑을 주고받는 존재이다. 그 사람이 아닌 동물은 바나나를 즐겨 먹는다.’

싱어라면 아마 사람과 침팬지에 대해 이렇게 썼겠지.

인권문제는 사소한 암초들이 잠겨 있는 거대한 바다와 같은 것이다. 겉보기에는 아무 일 없이 지날 수 있는 것 같지만 결국 그 암초 때문에 배가 좌초되는. 그러니 나를 돌려 달라. 본인을 돌려 달라. 내 사생활을 돌려 달라. 작은 것은 작은 것이 아니다. 모든 굴종과 복종의 문제가 그러하듯이.

임상심리학박사·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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