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시대 책이 사는길]김학원-정은숙 두 출판인의 조언

  • 입력 2005년 7월 6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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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스트’의 김학원 대표(왼쪽)와 ‘마음산책’의 정은숙 대표가 만나 ‘책을 통해 진화한다’는 그들의 진한 책사랑 얘기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은 편집자가 저자의 원고를 ‘날로 먹던’ 시대는 지나갔다고 입을 모은다. 신원건 기자
‘휴머니스트’의 김학원 대표(왼쪽)와 ‘마음산책’의 정은숙 대표가 만나 ‘책을 통해 진화한다’는 그들의 진한 책사랑 얘기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은 편집자가 저자의 원고를 ‘날로 먹던’ 시대는 지나갔다고 입을 모은다. 신원건 기자
《‘책을 통해 진화한다’는 마흔 둘 동갑내기 출판인이 만났다. ‘휴머니스트’의 김학원 대표와 ‘마음산책’의 정은숙 대표. 외환위기의 상처가 채 가시기도 전인 2000년 벽두에 편집자에서 독립해 출판사를 차린 두 사람은 수년 만에 출판인으로 자리를 굳혔다. 최근 2, 3년 사이에 편집장 출신들이 잇따라 출판사를 세운 것도 이들의 ‘홀로서기’에 영향을 받았다는 얘기가 출판계에서 나온다.》

1992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한 시인인 정 대표는 “지금도 서점에 가면 가벼운 현기증을 느낀다”면서 “종이 냄새를 맡을 때마다 나무에 대한 죄책감과 함께 투지가 불타오른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읽는 책이 아닌 보는 책을 지향한다. 영상과 언어, 사유와 비주얼이 여러 장르와 만나는 하이브리드 양식의 문예출판을 시도하고 있다.

‘테마가 있는 문학기획’으로 문예출판을 시도하고 있는 정 대표는 ‘시가 내게로 왔다 1, 2’(2001년), ‘예술가로 산다는 것’(2001년), ‘J이야기’(2002년), ‘기쁨이 열리는 창’(2004년) 등의 책을 펴내 독서시장에서 호평을 받았다.

“책은 텍스트만 옮기는 게 아니지요. 저자의 숨결과 마음까지도 스며들어야 합니다. 월터 베냐민 식으로 말하자면 ‘아우라’를 담아내는 거지요.”(정 대표)

김 대표도 고개를 끄덕인다.

“바야흐로 ‘미디어 믹싱’ 시대입니다. 출판도 이제 ‘멀티플레이’를 펼쳐야지요. 특히 저자의 원고를 ‘날것’으로 받아먹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편집자라면 당대에 어떤 서사와 상상력이 필요한지 고민해야지요. 저자와 머리를 맞대고 우리 시대의 텍스트를 기획해야 합니다.”

김 대표가 100여 명 가까운 자문위원의 도움을 받아 펴낸 ‘살아있는 교과서 시리즈’는 인문서로는 드물게 30만 부가 팔렸다. 꾸준히 팔리고 있는 ‘서양과 동양이 127일간 e-mail을 주고받다’(2001년), ‘노마디즘 1, 2’(2002년), ‘오만과 편견’(2003년) 등도 김 대표가 기획해 펴낸 책들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변화’가 사회의 화두로 등장하면서 실용서와 재테크 서적 출간이 붐을 이뤘지만 두 사람이 생각하는 출판의 본령은 다르다.

“요즘 들어 느림과 환경, 명상, 가치 조정에 관한 책들이 조용히 약진하고 있어요. 우리 사회가 ‘변화에 대한 변화’를 시작하고 있다는 바람직한 징후지요.”(정 대표)

김 대표는 한국 출판의 미래는 ‘아시아의 연대’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비단 책 수출뿐 아니라 작가와 작가, 편집자와 편집자 간에 ‘지적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합니다. 아시아권을 겨냥한 공동 마케팅이 절실해요. ‘아시아 작가상’도 만들고 ‘아시아의 스타’를 키워 세계시장에 내보내야 합니다.”(김 대표)

책의 위기, 책의 종말이 점쳐지는 인터넷 시대에도 책은 꾸준히 읽힐 것인가.

“인터넷이 정보의 바다라고요? 하지만 그 자체로는 ‘데이터 스모그’에 불과해요. 이들 정보를 체계적으로 갈무리하는 것, 그게 책의 사명이고 생명력이지요.”(정 대표)

“교보문고에 가보세요. 독자층이 초등학생에서부터 40, 50대에 이르기까지 고루 퍼져 있습니다. 아주 깊고 넓은 사이클이 형성돼 있어요. 독서시장의 생태계에 ‘종의 다양성’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겁니다.”(김 대표)

김 대표와 정 대표는 책이 맡아야 할 역할은 영원하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책을 통해 무엇을 말해야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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