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나성린]재주는 곰이 넘고

  • 입력 2005년 5월 27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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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무총리 공관에서 있었던 이해찬 총리의 품위 없는 말들을 전해 들으면서 참여정부 인사들의 오만함은 참으로 끝이 없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그들은 툭하면 다음 대통령선거에서도 자신들이 이길 수밖에 없다고 큰소리를 치는데, 이러한 오만함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이 정권의 리더들이 입을 열 때마다 이 나라의 평범한 국민으로 살아가기가 참으로 피곤하다.

지난 2년 반 동안 경제를 어렵게 만들고, 헌법재판소가 기각하긴 했지만 유사 이래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핵소추를 당하고, 탄핵 후폭풍 덕에 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도 1년 이상을 허송하고, 재·보선에서 이 나라 의정 역사상 처음으로 23 대 0이라는 완패를 당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 있으니 그들에게 이 나라 국민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빈곤 서민층을 위한다면서 빈곤 서민층을 더 어렵게 하고, 젊은이를 한껏 이용하면서 청년실업을 심화시키고, 지방 균형발전을 한다면서 지방을 더 어렵게 하고, 균형성장을 한다면서 양극화를 더 심화시키고, 중소기업을 위한다면서 중소기업을 고사시키고,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킨다면서 강남 집값만 올리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다면서 한미동맹을 훼손하고 북한 핵 위기를 더 고조시킨 것이 이 정권의 현재까지의 성적표다.

한 나라의 국정을 운영함에 있어서 목표가 바람직하고 그 목표를 향한 열정이 크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참여정부의 리더들은 자신들이 좋은 목표를 가지고 있고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음에도 모든 게 왜 그들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인지 되돌아봐야 한다. 이것은 그들을 인정하지 않는 보수 때문도 아니고, 그들에게 쓴소리 하는 언론 때문도 아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잘못됐고, 그러한 수단을 추진하는 인재 등용이 잘못됐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이 잘못됐음을 인정하지 않는 그들의 오만함에 가장 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반성해야 한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정권과 미국의 빌 클린턴 정권이 반대 세력과 언론의 끈질긴 공격을 받고도 경제를 살려낸 것은 그들이 올바른 정책을 썼고 또 그것을 추진할 수 있는 최고의 인재를 등용했기 때문이다. 편협한 인재 등용을 계속하며, 친일파 선조를 감춘 채 친일 과거 청산을 부르짖고, 과거의 주체사상(主體思想) 경력을 한번도 사과하지 않은 채 이 나라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의 정체성을 왜곡하는 독선적인 사람들이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한 우리 경제가 회복되고 선진경제로 도약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이다.

아직까지 이 나라의 경제가 지탱되는 것은 어떤 정권에도 충성할 준비가 되어 있는 테크노크라트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새로운 비전과 개혁엔 무관심하지만 적어도 망하지 않게 하는 노하우는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 경제가 아직 11대 경제대국으로 버티는 것은 이 정부가 잘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청산하려는 과거의 산업화 세력과 쓸개도 뺀 채 세계 곳곳을 누비며 장사를 하는 우리 기업들 덕분이다. 지금 참여정부 핵심 인사들이 온갖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유전 게이트’ 같은,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지르며 국민 혈세를 축낼 수 있는 것도 다 그들 덕분이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엉뚱한 사람이 번다는 비난을 듣지 않으려면 앞으로 남은 2년 동안이라도 참여정부는 어렵게 쌓아올린 이 나라의 부(富)를 낭비하지 않고 축적하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선 대선 승리만을 염두에 둔 꼼수 정책과 정치 고수들의 정략적 국정운영을 지양(止揚)하고 진정 이 나라를 선진화하고 우리 국민을 선진 국민으로 이끌 수 있는 국가전략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21세기 무한경쟁의 시대에, 그것은 우리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 외에 다른 것일 수 없다. 정부는 그에 장애가 되지 말아야 하고 도움이 돼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나라의 리더들은 나라에 득이 되는 말이 아니면 개구(開口)하지 말고 차라리 함구(緘口)해야 한다.

나성린 객원논설위원 한양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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