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유럽일주/5월12일]친절한 신부님…자기집 정원에 “텐트쳐라”

  • 입력 2005년 5월 26일 15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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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유럽 10개국 105일간의 일주’에 도전한 김대남(숭실대3)·이동원(한양대3)·정원제(경기대3)군.

이들은 지난 5월8일 한국을 떠나 일본을 거쳐 10일 프랑스 파리에 도착했다.

11일 파리시내의 한국인 민박집에 묵으면서 지도 등 여행에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고 12일 본격적인 자전거 여행을 시작한 이들은 생생한 여행소식을 일기체의 여행기와 사진, 동영상으로 동아닷컴에 보내왔다.

당초엔 인터넷을 통해 그날그날의 소식을 보내기로 약속했으나 유럽의 인터넷 사정이 부실해 부득이 계획을 수정,동영상과 사진자료를 항공우편을 통해 보내온 것.

이에 따라 동아닷컴도 계획을 바꿔 현지 소식을 그날 바로 보도하지 못하고 우편물 사정에 따라 약 10여일의 시차를 두고 내보내기로 했다.

그 첫 순서로 5월12일 '파리-senlis 여행기'를 동영상 및 사진과 함께 싣는다. <편집자>

○ 자전거 유럽일주 (이동구간 : 파리→Senlis. 이동거리 : 72km) 5월12일(목요일)

전날 오후 9시도 되기 전에 잠이 든 것 같다. 자전거를 많이 탄 것도, 잠을 못잔 것도 아닌데 아직 시차적응이 덜 된 것 같다. 일찍 잠이 든 탓인지 6시도 안돼 눈이 떠졌다. 어제 미처 준비하지 못한 오늘 루트와 일정 탓에 맘이 조금 무겁다.

부지런히 짐을 정리하고 자전거에 실어보니 이거 참... 입이 다물어 지질 않는다. 물론 예상은 했었지만 훨씬 무겁다. 그 동안 파리에 온 사실을 잊을 만큼 맛있는 한국음식을 해주신 민박집 아주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자전거에 올랐다. 자전거로 유럽을 일주한다니 다들 신기했는지 민박집 식구들이 모두 나와 환송해준다.

▶ '자전거로 유럽일주' 파리시내 화보

'자전거로 유럽일주' 동영상

어제 파리 시내를 한번 나갔다 와서인지 길이 낯설지 않다. 파리는 아직 여름이라고 하기엔 날씨가 조금 쌀쌀하다. 오늘 우리의 목적지는 파리를 기준으로 북동쪽에 위치한 Compiegne. 지도상으로 대략 120km정도 되는 것 같다. 먼 거리지만 대부분이 평지인 점을 감안해 조금 무리하게 일정을 잡았다.

일단은 파리 시내를 벗어나는 게 첫 번째 과제. 교통문화에 있어서는 파리 시민들은 선진 시민들은 아니다. 오버다 싶을 정도로 짧은 거리에도 신호등이 있지만 대부분의 파리 시민들은 신호를 무시한다. 대충 차가 안 온다 싶으면 빨간불에도 잘 건넌다. 웃기는 건 그래 놓고 상대방이 조금 잘못하면 과도한 제스처를 써가며 화를 낸다. 철저하고 원칙주의자일 것만 같던 파리 시민들의 그런 모습이 재미있다.

2시간 정도 자전거를 타고 나오니 이제는 대충 파리시내를 벗어난 거 같다. 어제 파리시내를 돌아다닐 때 그 복잡함을 경험했기에 오늘은 파리 외곽도로로 와 봤는데 꽤나 한적한 것이 잘한 거 같다.

자전거 여행 특히 낯선 곳에서의 자전거 여행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길 찾는 것을 걱정하곤 한다. 물론 나도 걱정을 했었다. 하지만 모르는 길을 지도와 나침반을 보며 찾아가는 것 또한 자전거 여행의 큰 재미가 아니겠는가. 지도와 나침반만으로 어렵다면 직접 물어보는 것도 무척 재미난다. 물론 뜻이야 다 이해는 안 되지만 그간 한국에서 시달린 영어를 써보는 것 또한 여행의 큰 재미거리.

어제 파리 시내를 돌며 거리의 예술적 감각에 놀랐다면 오늘은 프랑스 지방의 아름다운 경관에 다시 한 번 놀랐다. 무척이나 넓게 펼쳐진 들판과 그 끝쯤에 자리 잡고 있는 빨간 지붕의 건물들이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

사진으로 보는… (5월12일)

아침에 민박집 아주머니가 싸주신 계란과 쏘세지로 점심을 때웠는데 그게 잘 못됐는지 원제가 많이 힘들어 한다. 평소 같으면 혼자서 저만치 앞서나갈 녀석인데 오늘은 자꾸 뒤로 쳐진다. 대충 지도로 보니 Compiegne까지 반도 못 온 거 같다. 어쩔 수 없이 목적지를 파리와 Compiegne의 중간에 위치한 Senlis로 수정했다. 여행에 있어 많은 거리를 간다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글쎄 아직 여행 초반이라 그런지 쉽게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Senlis로 가는 길은 무척 쉽다. 그저 지도에 빨갛게 표시된 길을 따라 쭉 가기만 하면 된다. 특별히 언덕이 많은 것도, 길이 안 좋은 것도 아니지만 이놈의 바람이 문제다. 자전거를 탈 때 언덕을 오르는 것도 힘든 일이긴 하지만 그보다 더 문제는 바람이다. 바람이 심하게 불면 내리막을 내려 갈 때도 시속 20km를 넘기기가 쉽지 않다.

바람을 가르며 Senlis에 도착하니 3시 조금 넘은 시간. Senlis에서 북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캠핑장 표시가 있다. 때마침 우리 옆을 지나가던 싸이클 선수가 있어 길을 물어보니 친절하게도 캠핑장 근처까지 동행해 주겠단다. 자전거란 공통점 때문인지 쉽게 호감을 표시한다. 덕분에 헤매지 않고 캠핑장까지 잘 찾아왔다. 구입한 뒤 한 번도 사용 안 한 텐트도 빨리 펴보고 싶었고 처음으로 캠핑장에서 잠을 잔다는 사실에 무척 기대된다. 허나 도착한 캠핑장은 번잡하지도 깔끔하지도 않았다. 그저 굳게 닫힌 문에 ‘Closed’ 란 커다란 팻말만 꽂혀있을 뿐. 이번 여행을 하며 후에 추억이 될 많은 에피소드가 있기를 바랬지만 이렇게 빨리 다가올 줄이야... 무척 난감했다. 지도에 표시된 Senlis 근처의 캠핑장은 이곳뿐인데.

○ Senlis의 신부님.

다들 좌절하고 아무생각 없이 앉아있는데 멀리서 차 한 대가 다가온다. 다가가보니 한국 여성분이 웃으며 말을 건넨다. 우리 자전거에 걸려있는 태극기를 보고 왔단다. 파리에 온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한국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에 무척 반가웠다. 특히나 이런 곤란한 상황에서 만나니 더욱 반갑다. 굳이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알아볼 만한 눈빛으로 S.O.S를 보냈다. 안타깝게도 지금 일을 하러 가는 길이라 7시나 되야 돌아온단다. 돌아와서 도움을 주시기는 하겠지만 글쎄 가만히 앉아 몇 시간을 기다리는 것도 올바른 여행이 아닌 것 같았다. 일단 되는데 까지 알아보기로 하고 지나가는 노부부에게 도움을 청해봤다. 텐트랑 코펠이랑 다 있으니 어디 텐트칠만한 곳이 없냐고. 글쎄 거의 못 알아들은 것 같은데 따라오란다. 좁은 골목으로 가더니 어느 허름한 집 앞에서 벨을 누른다. 잠시 후 인상 좋은 커다란 할아버지가 나오더니 다짜고짜 악수를 청한다. 대충 우리의 사정을 설명하고 부탁을 드리니 집안으로 안내한다. 밖의 허름한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집안은 무척 넓고 좋아보였다. 특히나 집 옆에 있는 잔디밭은 무척 넓고 깨끗했다. 우리보고 여기서 텐트치고 자란다.

이렇게 감사할 수가...

냅다 텐트를 치고 뜨거운 물로 샤워도 했다. 코펠로 밥도 해먹고 나니 휴... 이제 좀 살겠다. 잠시 후 할아버지가 오래된 필름 카메라를 가져오며 사진을 찍자고 하신다. 우리가 신기한지 아님 반가운지 아무튼 기분 좋게 사진도 한 장 찍었다. 또 다시 할아버지가 다시 와서 뭐라고 그러신다. 전화기 얘기를 하시는 것 같은데 일단 할아버지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어디다 전화를 하더니 우리보고 받아보란다. 반갑게도 한국 분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파리에 계시는 한국인 신부님이셨다. 반가움에 이것저것 얘기를 하다 이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의 정체에 대해 물어보니 신부님이시란다. 현재는 일선에서 물러나긴 했지만 꽤나 유명하고 대단한 분이셨는가보다. 서울도 다녀오셨다고 하시며, 동양인 특히 한국 사람을 매우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난관도 있었지만 초반 시작이 좋다. 생각지도 못한 만남으로 이런 좋은 경험을 하니 이래서 여행은 좋은가 보다. 내일을 기대하며 기분 좋게 새 텐트에서 아무걱정 없이 눈을 붙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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