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송대근]‘노동귀족’ 말에서 내려야

  • 입력 2005년 5월 25일 03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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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는 말이 있다. 국어사전의 풀이는 이렇다. ‘경마’는 말을 몰기 위해 잡는 고삐다. ‘경마 잡히다’는 누군가에게 고삐를 잡도록 하는 것이다. 걸어가기보다는 말을 타고 가는 게, 말을 타고 가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고삐를 맡기는 게 훨씬 편하다는 뜻이다. 결국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음을 이른 말이다.

물론 욕망은 삶의 원천이다. 그것이 삶을 힘 있게 만든다. 욕망이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문제는 그 욕망이 지나쳐 탐욕이 됐을 때다. 스스로 절제하지 못해 몰락한 사람을 수없이 보아 왔다. 이름깨나 알려진 정치인이나 경제인에 국한된 얘기도 아니다.

노동자 권익신장에 앞장서겠다던 사람들이 노동운동이라는 보호막 아래서 불법 비리를 일삼아 온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시공업체에서 수십억 원의 리베이트를 받은 한국노총 복지센터 건립 비리, 노조 기금 투자를 둘러싼 전국택시노련의 검은돈 거래,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노조의 취업 장사…. 탐욕의 끝이 어디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노조 간부들이 룸살롱에서 뒷거래를 하고, 수사가 시작되자 돈을 준 사람에게 허위 진술을 요구했다는 대목에 이르면 말문이 막힌다.

이들은 대부분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고 기업주의 부도덕성을 공격하는 것으로 자신의 입지를 넓혀 온 사람들이다. 그동안 노조 지도자들은 우리 사회의 양심으로 행세했고, 한때는 민주화운동의 중심 세력이라고 자부하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인정할 대목도 적지 않다. 그래서 최근 잇따라 터진 노조 비리가 더욱 충격적이다. 노조 간부의 이중성에 일선 조합원들도 분노하고 있다.

사실 대기업 강성 노조의 이중적 행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쟁취(爭取) 상대인 회사에서 전임자 급여는 물론 각종 차량 등을 지원받는다. 취업 장사를 해오다 적발된 현대자동차 노조의 경우 단체협약에 따른 전임자가 90명에 이르고 이들의 급여만도 연간 50억 원이 넘는다. 교육위원 등 임시상근자 130여 명도 대부분 생산라인에서 빠진다. 대의원 390여 명에게도 작업 열외(列外)의 길이 열려 있다.

이제 노동귀족(勞動貴族·labor aristocrat)이란 말이 우리에게도 낯선 단어가 아니다. 산업자본시대 영국에서는 숙련공이나 작업감독이 자본가에 매수되는 형태로 노동귀족이 형성됐으나 우리는 사용자와 사사건건 대립하면서도 누릴 것은 다 누리는 게 다를 뿐이다. 한국노총 민주노총 선출직 간부의 현업 복귀율이 28%에 불과하고 3회 이상 연임한 간부가 수두룩하다는 한 조사결과가 노동귀족의 실상을 말해 준다.

노조활동의 대전제는 전체 조합원의 근로조건을 유지 개선하는 것이다. 산업평화, 국가경제 발전 등 사회적 이익 추구도 도외시해선 안 된다. 노동권력에 심취해 노조의 정체성을 망각하고, 조합원을 피지배계급쯤으로 여겨온 노동귀족은 스스로 말(馬)에서 내려야 한다. 그러나 경마를 잡히는 데 익숙해진 그들의 자정(自淨)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결국 그들을 뽑아 준 조합원이 결단할 차례다. 그것도 안 되면 노동부 장관이 언급한 대로 정부가 나서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다.

송대근 논설위원 dk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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