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서울大 마찰]국정과제委 지방대 교수가 주축

  • 입력 2005년 5월 23일 03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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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9월 7일 민주당 대통령후보였던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학벌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개인적으로 서울대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학벌 없는 사회’라는 시민단체의 월례토론회에서였다. ▽‘지방대 출신 키우기’는 노 대통령의 소신=취임 이후 노 대통령이 서울대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한 적은 없다. 최근 서울대의 논술 강화 방침을 비판한 스승의 날 메시지에서도 “우수한 학생을 키우는 일보다 시험 성적이 좋은 학생을 뽑는 데 치중하는 일부 대학의 욕심이 우리 공교육의 근간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고 우회적으로 얘기했다.

그러나 정부 고위직에 지방대 출신이 역대 어느 정권에서보다 많이 진출하고 있는 것은 일류 대학을 중심으로 한 학벌주의와 서열주의에 대한 노 대통령의 강한 비판의식과 맥이 닿아 있다는 게 청와대 안팎의 중론이다.

노 대통령은 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3월 초 조각(組閣) 명단을 발표하면서 “(장관 중에) 서울대 출신이 많지만, 학교까지 안배하려 하니 인사가 엉망이 될 것 같아 포기하고 고려하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장관 인선 과정에서 출신 대학까지 인위적으로 안배하려 했으나, 관료사회 내의 비서울대 출신 인재풀이 워낙 빈약하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는 얘기다. 행정부처 장차관을 비롯한 정부 고위직에 지방대 출신이 이전보다 약진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국가 균형발전’ 전략을 채택한 노 대통령의 인식과도 관련이 깊다.

▽참모진이나 자문그룹에도 서울대 출신 드물어=현 정부 출범 당시 대통령수석비서관 및 보좌관 이상의 고위참모진 중 서울대 출신은 11명이었다. 그러나 현재 고위참모진 14명 중 서울대 출신은 김영주(金榮柱) 경제정책수석, 이원덕(李源德) 사회정책수석, 정우성(丁宇聲) 외교보좌관, 정문수(丁文秀) 경제보좌관 등 4명으로 급감했다.

노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한 1988년 13대 국회의원 시절 이후 형성된 386 학생운동권 출신을 중심으로 한 ‘노무현 캠프’에도 서울대 출신은 소수다. 젊은 참모그룹에서는 윤태영(尹太瀛) 대통령제1부속실장, 천호선(千皓宣) 대통령국정상황실장, 열린우리당 이광재(李光宰) 의원, 김만수(金晩洙) 청와대 대변인을 비롯해 연세대 인맥이 많은 편이다. 또 이호철(李鎬喆) 대통령제도개선비서관을 비롯한 부산대 학생운동권이 뒤를 잇고 있다.

서울대 출신은 총학생회장 권한대행 출신인 황이수(黃二秀) 대통령행사기획비서관, 김종민(金鍾民) 전 청와대 대변인, 배기찬(裵期燦) 전 대통령정책수석실 행정관 정도에 불과하다.

대통령후보 시절의 자문교수단에도 서울대 교수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기용됐던 윤영관(尹永寬) 교수와 현재 고령화 및 미래사회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용익(金容益) 교수 정도였다. ▽대통령자문국정과제위원회는 지방대 교수가 다수=현 정부의 중장기 정책과제를 다루는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와 11개 국정과제위원회는 지방대 교수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본보 조사결과 이들 위원회에 민간위원으로 위촉된 대학교수 126명(중복자 제외) 중 서울대 교수가 10명으로 가장 많고, 연세대 교수 5명, 고려대 교수 4명이다.

하지만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절반이 넘는 68명(54%)이 현재 지방대 교수로 재직 중이라는 점이다. 지방대 교수는 36개 대학에서 고르게 참여하고 있는데 이 중 충북대 교수 6명, 경북대 교수 5명, 충남대 전남대 부경대 교수가 각 4명씩 포함돼 있다.

그러나 지방대의 약진이 꼭 노무현 정부의 인위적인 노력 탓만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시장에 민감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중에서도 서울대 출신 비율이 꾸준히 줄어왔고, 이는 시대적 추세라는 얘기다.

월간 ‘현대경영’이 최근 국내 100대 대기업(금융·보험·공기업 제외) 대표이사 139명의 출신 대학을 조사한 결과 서울대 출신은 57명(41.0%)으로 10년 전인 1995년 54.9%에서 2002년 45.3%, 2003년 43.7%, 2004년 43.3%에 이어 꾸준한 하락세를 보여 왔다.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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