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463>卷六.동트기 전

  • 입력 2005년 5월 20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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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지난 날 의제(義帝)께서는 먼저 관중에 드는 사람을 관중왕(關中王)으로 삼으리라 약조하셨소. 과인은 험준한 무관(武關)을 넘고 갖은 간난과 신고 끝에 진나라를 쳐부수어 함양을 차지하고 진왕(秦王) 자영의 항복을 받아내었소. 그러나 뒤에 입관(入關)한 대왕은 그 모든 공을 가로챘을 뿐만 아니라 과인을 관중에서도 가장 궁벽한 모퉁이가 되는 파촉(巴蜀) 한중(漢中)에 가두어 버렸소. 따라서 과인이 섶 위에 눕고 쓸개를 맛보듯(臥薪嘗膽)하여 다시 삼진(三秦)으로 나온 것은 원래 의제께서 약조하신 관중의 땅을 온전히 되찾기 위해서였소이다. 이는 마땅히 차지해야 할 것을 되찾으려 나온 것일 뿐이니, 과인이 파촉 한중을 나온 것이 무슨 죄가 되겠소?

거기다가 대왕은 진나라를 쳐 없애는 데 으뜸가는 공을 세웠으나, 제후로 남아 의제를 섬기기를 마다하고, 스스로 패왕(覇王)을 일컬으며 멋대로 천하의 우이(牛耳)를 잡았소. 멀고 가까움에 따라 제후를 세우고 땅을 갈라 주더니, 공론으로 세운 의제마저 침현(¤縣)으로 내쫓아 마침내 장강(長江) 가운데서 시해하고 말았소. 그리고 망진(亡秦)을 대신해 천하를 힘으로 억누르고 함부로 사람을 죽이니, 제후들이 모두 과인에게 의지해 왔소이다. 과인은 관동(關東) 제후들의 간절한 부름을 외면하지 못해 함곡관을 나왔다가 낙양 신성(新城)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삼로(三老) 동공(董公)으로부터 의제께서 시해당한 소식을 들었소.

과인은 왼쪽 소매를 벗고 크게 통곡한 뒤에 의제를 위해 발상거애(發喪擧哀)하고 사흘이나 임곡(臨哭)하였소. 그리고 천하에 사자를 보내 제후들에게 의제가 시해당하신 일을 알리니 며칠도 안 돼 모여든 왕이 다섯에 군사가 50만이 넘었소. 이에 임금을 시해한 대역의 무리를 치고자 그 소혈(巢穴)이 되는 팽성으로 밀고 들어갔던 것이오. 군진(軍陣)의 강약이 반드시 충의(忠義)와 나란히 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히도 다시 밀리고 말았으나, 원통하게 시해된 임금을 위해 보수(報수)하려 한 것이 무슨 죄가 되겠소?”

이 말을 듣자 패왕 항우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불이 철철 듣는 듯한 두 눈을 흡뜨고 문루를 올려다보며 무어라 거친 욕설을 퍼부으려는데, 패왕과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성안을 살펴보던 범증이 가만히 일깨워 주듯 말했다.

“대왕께서는 저 홍문(鴻門)의 잔치에서 겪은 일을 벌써 잊으셨습니까? 저잣거리에서 닳고 닳은 한왕의 더러운 잔꾀와 반들거리는 말솜씨에 다시 넘어가서는 아니 됩니다. 한왕은 지금 일부러 말을 길게 하여 한편으로는 대왕의 들끓는 기혈(氣血)을 뒤틀어 엎고, 다른 한편으로는 듣고 있는 사졸들에게 대왕의 허물을 두루 성토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는 입을 섞어 말하지 마시고 이만 진채 안으로 드시지요. 어차피 성을 깨고 한왕을 사로잡아야 끝나게 될 싸움입니다.”

그러면서 옷깃을 끌 듯 패왕을 재촉해 진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한왕 곁에서 패왕과 범증이 하는 짓을 말없이 보고만 있던 장량이 문득 한왕을 보고 말했다.

“어서 장수들을 불러 한바탕 모진 싸움을 채비하게 하십시오. 우리는 어쩌면 오늘 이 형양성 안에서 치러야 할 싸움 중에 가장 힘든 싸움을 치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한왕도 그 말을 옳게 여겼다. 곧 성안의 장수들을 모두 불러 모으게 한 뒤에 당부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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