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신문은 고이즈미 총리가 16일 국회 답변에서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공자의 말을 인용해 제2차 세계대전의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 참배의 정당성을 주장한 데 대해 “이는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할 때 사용하는 말”이라며 “사려가 너무 부족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아사히신문은 ‘공자가 탄식하지 않을까’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A급 전범은 일본의 침략전쟁 등에 책임을 져야 할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고이즈미 총리가 한국과 중국의 반발을 ‘외국의 부당한 간섭’으로 몰아붙인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이런 식으로는 열매를 거두는 대화가 이뤄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사설은 “공자는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는 것이야말로 잘못’이라는 말도 했다”고 덧붙였다.
리센룽(李顯龍) 싱가포르 총리도 17일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일본의 점령을 경험한 국가에 나쁜 기억을 되살리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리 총리는 이달 말로 예정된 일본 방문을 앞두고 일본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싱가포르인을 포함한 많은 사람에게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일본이 전쟁 중에 나쁜 짓을 했다는 책임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의사 표시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말했다.
▼고이즈미의 ‘공자’ 발언▼
고이즈미 총리가 인용한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공자 어록은 공자의 9대손인 공부(孔駙)가 편찬했다는 ‘공총자(孔叢子)’ 중 ‘형론(刑論)’의 한 구절로 보인다. 원문은 ‘증죄부증인(憎罪不憎人)’. 그러나 ‘공총자’는 이미 북송(北宋) 때부터 위서(僞書)로 평가받아 왔다. 아사히신문이 이 말 대신 고이즈미 총리에게 당부한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는 것이야말로 잘못(不而不改 是謂過矣)’이라는 말은 ‘논어’ 중 ‘위령공(衛靈公)’편에 나오는 공자의 유명한 어록이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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