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박상준]386 ‘잃어버린 세대’ 되기 쉽다

  • 입력 2005년 5월 16일 1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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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386’세대들은 인류 문명사적으로 꽤 독특한 존재가 될 것 같다. 왜 그런가를 알기 위해 먼저 시야를 좀 넓혀 보자.

20세기는 과학기술의 발달 속도가 인간의 생물학적 세대교체 속도를 추월한, 인류역사상 유일무이한 시기였다. 예를 들어 1900년생을 가정해 보면 그가 태어날 때는 아직 비행기조차 없었지만, 천수를 누리고 70세에 눈을 감았다면 인간이 달에 도달한 장면을 보았을 것이다.

인류 역사상 이렇듯 과학기술이 급변하는 시대를 살았던 세대는 없었다.

그런가 하면 21세기부터는 이런 변화 자체가 하나의 익숙한 환경이 돼버린 시대이다. 지난 십수 년 사이에 컴퓨터나 휴대전화 등의 세대교체가 얼마나 숨 막히게 일어났는지 돌이켜 보라.

이제는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첨단 신제품들에 매번 감탄하기보다는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지 않은가. 20세기 이전 사람들은 ‘정체’가, 그리고 21세기 이후는 ‘변화’가 일상 환경이 된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환경의 변화에 인간의 정신도 보조를 맞춰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고착된 사고(思考)로는 변화하는 미래에 적응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사회주의 실험의 실패가 자본주의의 정당성을 입증한다고만 보면 안 된다. 또 자연환경을 개발의 대상으로만 보고 지금과 같은 수치적 경제성장률에만 집착하는 한 인류의 미래는 밝지 않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와 보자. 386들은 어지러운 과학기술의 세대교체 속도를 피부로 체감하면서도 성공적으로 적응한 사실상 첫 번째 세대다. 사상적으로는 1980년대를 거치면서 그전까지 금기시되던 급진 좌파적 이념도 처음으로 별 거부감 없이 접할 수 있었다. 이들이 여전히 벗어던지지 못한 고정관념이라면 민족주의 정도다.

그런가 하면 성장기의 경제적 환경이 빈곤에서 풍요로 전환되는 것을 경험한 세대 역시 386이다. 필자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초등학생이던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집집마다 전화가 놓여졌고, 대학생이던 1980년대 후반부터 캠퍼스에 자가용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이런 환경이 요즘 30대 초반 이전 연령의 사람들에겐 익숙하겠지만, 386들에게는 분명 감회가 남다른 것이다.

먼저 얘기한 문명사적 차원에서의 변화와, 한국이라는 국지적 상황에서의 변화를 겹쳐서 겪은 사람들이 바로 한국의 386들이다.

이들보다 젊은 사람들은 변화와 풍요 그 자체를 일상적으로 누리면서 자랐기에, 역설적으로 현실에 안주하려는 생각이 강하다. 또한 386 이전 세대들은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에 매달려야 했으므로 역시 안정 지향형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386들의 마인드는 변화에 익숙하다. 그 이전이나 이후 세대와는 확실히 다른 속성인 것이다.

이러한 386들이 본격적으로 사회 중심세력이 될 향후 20∼30년간이 어떻게 펼쳐질지 필자는 자못 궁금한데, 어쩌면 아래위 세대로부터 치이는 ‘잃어버린 세대’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도 된다.

아무튼 우리는 아직 변변하게 한국형 문명 전망이나 대안조차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21세기는 분명 지난 세기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환경으로 다가왔다.

과연 우리는 그 점을 인식하고 ‘큰 틀’에서 사유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럴 의지라도 있는 것일까.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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