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여서라도 장학금-기숙사 혜택 받자” 대학가 얌체족 판친다

  • 입력 2005년 5월 9일 18시 36분


코멘트
서울 A대가 올해 2월경 기숙사에 들어갈 학생을 새로 뽑을 때 있었던 일.

2학년 김모(21) 씨가 학생처에 “아버지 주소가 서울로 돼 있지만 어머니와 이혼한 뒤 노숙자 신세라서 못 본 지 몇 해 됐다”며 기숙사에 넣어달라고 끈질기게 요구했다. 부모 중 1명이라도 서울이 주소지이면 기숙사 입소가 불가능하기 때문.

학생처 직원들이 규정을 내세워 겨우 돌려보냈지만 김 씨는 며칠 뒤 아버지라고 자처하는 사람과 함께 다시 찾아 왔다. 두 사람이 “주소만 서울이지 사실은 지방에서 노숙자로 생활한다”고 함께 우겨대는 바람에 교직원들이 난감해 했지만 결국 입소가 무산됐다.

지방 출신이거나 생활이 어려운 학생을 위해 각 대학이 기숙사 시설과 장학금을 늘리려 애를 쓰지만 자격이 안 되면서도 편법으로 혜택을 받으려는 얌체족이 늘어나 대학 당국이 골치를 앓고 있다.

기숙사 이용료가 월 평균 20만 원 안팎으로 대학 주변의 하숙비(평균 40만∼50만 원·2인 1실 기준)보다 훨씬 적기 때문에 빚어지는 풍속도이다.

B대의 경우 편법으로 기숙사에 들어가고 장학금을 받으려던 학생이 올해 10명 이상 적발됐다. 한 학생은 부모가 아니라 생활보호대상자인 친척의 재산세 납입 영수증을 냈다가 퇴짜를 맞았다.

기숙사나 장학금을 받기 위해 부모의 주소를 지방으로 속이는 위장전입(?)은 애교 수준. 부모가 이혼했거나 지방 친척집에서 지냈다는 등 엉뚱한 주장을 펴는 ‘우기기형’, 부모형제를 동원해 사정하고 눈물 작전을 펴는 ‘읍소형’이 있는가 하면 장학금을 주지 않을 경우 인터넷에 학교의 행정시스템을 문제 삼는 글을 올리겠다는 ‘협박형’도 있다.

최근에는 가짜 서류를 제출하는 ‘위조형’이 늘어나는 추세. 성적증명서, 재산세 납입증명서, 주민등록등본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위조해 낸다.

인터넷에는 이런 편법을 모아 놓은 ‘눈 먼 장학금 타내는 방법’ ‘서울 학생 기숙사 들어가기’ 등의 글이 나돌고 있다.

이에 따라 건국대는 기숙자 입소자를 정한 뒤에도 학생자치위원회와 함께 입소 자격을 정기적으로 재확인하면서 무자격자를 가려내고 있다. 국민대는 주소와 가정 형편 등 세세한 사항을 등급별로 점수화한 ‘장학금 선발 척도’를 만들 예정이다.

홍익대 학생과의 최형배(崔亨培) 씨는 “등록금 인상으로 부담이 커진 건 이해가 되지만 일부의 편법 때문에 정작 필요한 학생이 혜택을 받지 못하면 곤란하다”며 “학교 측이 수혜 폭을 늘리려고 노력하는 만큼 학생들이 자성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