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속의 오늘]1979년 美-蘇 SALTⅡ 합의

  • 입력 2005년 5월 8일 19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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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상원이 ‘SALTⅡ’의 비준을 거부한다면 세계는 미국을 전쟁광으로 생각할 것이다.”

여기서 SALT는 당연히 소금(salt)이 아니다. 1979년 5월 9일 당시 미국과 소련이 합의한 ‘제2단계 전략무기제한협정(Strategic Arms Limitation Talks)’을 뜻한다. 그 뼈대는 핵 군축 차원에서 핵미사일 숫자를 상호 규제하자는 것.

다소 과격한 위의 발언은 반전반핵을 외치는 비정부기구(NGO)의 목소리가 아니다.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같은 달 10일 백악관에서 미국소매상연합 대표들을 면담하면서 한 얘기다. 카터는 “SALTⅡ 비준이 거부되면 세계 평화에 막대한 타격을 줄 것이며 한국 같은 잠재적 핵 강국으로의 핵 확산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1972년 체결된 SALTⅠ 이후 7년 만에 타결된 SALTⅡ는 국제적 빅뉴스였다.

같은 달 11일자 동아일보 사설은 그 의미를 이렇게 평가했다.

“가장 파괴력이 강한 핵무기의 관리 문제야말로 세계대전의 재발과 인류 절멸의 위기를 막는 길이라 하겠다. SALTⅡ는 작게는 미소 간 긴장 완화를 한층 촉진시키는 것이고 크게 보면 세계 평화를 위해 다행한 일이다.”

카터와 레오니트 브레주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SALTⅡ 조인을 위해 같은 해 6월 15∼18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마주 앉았다. 카터는 빈에서도 ‘세계 평화의 사도’ 같았다.

그는 14일 밤 도착 성명에서 “핵전쟁 위협의 감축과 보다 안정된 세계의 실현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평화의 사명’을 띠고 왔다”고 선언했다. 16일 정상회담 후에는 “한번의 오산(誤算), 한번의 오류, 한번의 핵폭발이 인류 최후의 궁극적 재앙을 부를 것”이란 내용의 공동성명이 발표되기도 했다.

그러나 카터의 평화는 그만의 것이었다. 미국 내 대(對)소련 강경론자들은 “군축 협상의 진전은 소련의 인권 문제 및 침략 행위와 연계돼야 한다”며 “SALTⅡ는 미국의 안보만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소련이 같은 해 12월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카터의 정치적 입지는 더욱 약화됐다.

SALTⅡ는 카터의 레임덕과 운명을 같이하며 시들해졌고 유효기간의 마지막 날인 1985년 12월 31일까지 비준을 받지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8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한 핵 군축의 새 ‘출발’(START·Strategic Arms Reduction Talks·전략무기감축협정)을 지켜보면서….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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