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61년 美 첫 대기권밖 비행

  • 입력 2005년 5월 4일 18시 59분


코멘트
‘영광스럽지 않은 영광’이었다. 1961년 5월 5일 미국의 첫 우주인 앨런 셰퍼드가 머큐리 3호를 타고 우주 비행에 성공했지만 그의 여행은 대포알처럼 발사되어 그냥 떨어지는 탄도 비행이었다. 총 비행시간 15분 중 대기권 밖에서 무중력 상태를 맛본 것은 겨우 5분. 기술적으로 별 의미 없는 비행이었다.

반면 정치적 의미는 과도했다. 그의 우주 비행은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세계 최초 우주 비행에 성공한 지 3주 후에 이뤄졌다. 1957년 러시아가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쏘아올린 뒤 불붙은 우주전쟁에서 미국은 계속 열세였다. 셰퍼드의 비행은 인간을 우주 공간에 보내는 것마저도 소련에 선수를 빼앗긴 미국이 실추된 위신을 만회하려 허겁지겁 당시 기술로 가능한 우주 비행을 급조한 결과다.

‘우리도 할 줄 안다’는 수준이었던 그의 비행은 이듬해 훈련동기생 존 글렌이 지구를 세 바퀴 도는 궤도여행에 성공함으로써 곧 잊혀졌다. 게다가 우주 비행 이후 셰퍼드는 평형감각을 잃어버리는 귓병인 메니에르 병에 걸렸다. 더는 우주를 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인간사는 새옹지마’라 했던가. 일본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가 쓴 ‘우주로부터의 귀환’에 따르면 셰퍼드는 경제적으로 가장 성공한 우주비행사다. 휴스턴 우주센터에서 일하는 동안 부동산 투자를 시작해 건설업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간 그는 1960년대 후반 백만장자가 되었다. 귓병에 걸린 뒤 우주비행사실 실장으로 지상 근무를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백만장자 셰퍼드’ 또한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 동기생 글렌에게 졌다는 열패감이 줄곧 그를 따라다녔다. 우주 비행의 꿈을 끝내 접지 못한 그는 당시만 해도 위험하게 여겨지던 메니에르 병 치료 수술을 몰래 받은 뒤 1969년 현역에 복귀했다. 사무실에서도 전화로 투자 지시를 내려 빈축을 사던 태도를 싹 바꿔 투자 물건을 모두 팔고 훈련에 전념했다.

1971년 아폴로 14호 선장으로 달에 착륙해 꿈을 이룬 셰퍼드는 우주 비행의 역사에 또 하나의 기록을 남겼다. 골프광이었던 그는 조립식 아이언 채와 골프공 2개를 갖고 승선해 달에서 골프를 쳤다. 결과는 생크와 톱볼 등 ‘미스 샷’이었지만 그는 ‘최초이자 지금까지 유일한 달나라 골퍼’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