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14년 나폴레옹 엘바섬 유배

  • 입력 2005년 5월 3일 19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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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이 피면 돌아오겠다.”

1814년 5월 4일. 지중해의 작은 섬 엘바로 유배를 떠나는 45세의 패장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유배지에서도 황제의 복장을 벗지 않았고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승전국들이 영토배분 문제로 1년여에 걸친 탁상공론을 벌이고 있는 동안 치밀하게 뒷날을 준비했다.

나폴레옹은 비록 황제 자리에서 쫓겨났지만 프랑스의 복고왕정으로부터 연간 200만 프랑의 연금을 받고 400명의 자원부대도 거느릴 수 있었다. 그는 사실상 엘바 섬의 군주였다.

돌이켜 보면 나폴레옹에게 이 시기야말로 첫 아내 조세핀과의 세기의 사랑 이후 가장 찬란한 시간이었다. 26세 되던 해 두 아이의 어머니인 6세 연상의 과부와 결혼했고 프랑스 총사령관으로 유럽과 중동, 북아프리카에까지 위세를 떨쳤던 나폴레옹. 러시아 원정에 실패해 황제 자리에서 추락한 그가 인생의 마지막 불꽃을 태운 게 바로 이때였다.

나폴레옹의 엘바 섬 유배는 프랑스의 문호 알렉상드르 뒤마가 쓴 ‘몽테크리스토 백작’에도 등장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 에드몽 당테스가 나폴레옹을 엘바 섬에서 탈출시키려 했다는 모함을 받아 투옥되기 때문이다.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고 했던 나폴레옹은 가장 좋아하는 제비꽃이 채 꽃망울을 터뜨리기도 전에 약속을 지켰다. 이듬해 2월 엘바 섬을 떠나 파리 튈르리 궁까지 진격하는 데 20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나폴레옹이 프랑스 남부 해안도시 칸에 상륙해 파리로 진격을 시작하자 공화주의자와 농민들은 쟁기를 들고 그의 밑으로 모여들었다. 그를 체포하러 온 군인들까지 줄줄이 투항했다. 프랑스 언론은 이 짧은 기간 나폴레옹을 ‘악마→코르시카의 늑대→호랑이→장군→황제’로 시시각각 바꿔 불렀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역사를 바꾸지는 못했다. 워털루 전쟁 패배와 함께 그의 복귀는 100일 천하로 끝난다. 역사를 움직인 수많은 인물 가운데 예수 다음으로 많은 전기가 씌어졌다는 나폴레옹. 그는 머나먼 아프리카의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쫓겨 가 6년 뒤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장환수 기자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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