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창 기자의 북극통신]첫 산악그랜드슬램 박영석 북극점 인터뷰

  • 입력 2005년 5월 2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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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원정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젠 살아서 돌아가야지요. 식량도 떨어졌는데 북극점에 앉아 굶고 있을 수만은 없잖아요?”

1일 북극점을 밟아 세계 최초로 산악그랜드슬램(히말라야 8000m급 14좌 및 7대륙 최고봉 완등, 3극점 정복)의 주인공이 된 박영석(朴英碩·42·골드윈코리아 이사·동국대 산악부 OB) 탐험대장.

전날 환호하던 모습과는 달리 2일 위성전화를 통해 들리는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대원들을 이끌고 안전하게 베이스캠프가 있는 레졸루트로 돌아가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

레졸루트로 귀환하려면 경비행기를 타야 한다. 북극점에서 원정대를 수송하는 경비행기 회사는 이번 원정의 마감시한을 5월 7일로 못 박았다. 이 날짜를 넘기면 얼음이 얇아져 비행기가 북극점에 착륙할 수 없다는 것.

“2년 전 러시아 쪽에서 북극점 원정에 나섰을 때도 항공사가 착륙하기 어렵다며 보급을 중단하는 바람에 북극점을 눈앞에 두고 포기했어요. 이번에 또 그런 일이 생기면 아예 위성전화를 꺼버리고 계속 북극점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목숨을 걸었다는 얘기다. 박 대장은 그런 사람이다.

“히말라야 고산에 31번 도전해서 18번 성공했어요. 성공률이 절반이 넘죠? 이번이 북극점 도전 2번째니까 죽을 각오로 덤비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는 ‘단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을 즐겨 쓴다. 이번 원정의 성공 가능성은 몇 %나 됐을까? “딱 1%였던 것 같네요. 북위 85도를 넘어서면 난빙(얼음산)이 사라진다고 했는데 극점 코앞까지 계속됐고 수십 년 만의 혹한이 몰아치고….”

가장 큰 고비는 북위 85도 지점에서 찾아왔다. 보급을 받은 뒤 썰매가 너무 무거워 전진속도가 크게 떨어진 것. 그는 대원들을 모아놓고 “기한 내에 북극점에 도달하려면 식량과 연료를 절반 이상 버려야 한다”고 선언했다. 원정의 생명줄인 식량과 연료를 버리겠다니 대원들이 불안과 공포에 질릴 수밖에…. 그래도 버렸다. 그리고 목숨을 건 이 결단은 들어맞았다.

그가 어려운 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가족의 사랑. 박 대장의 아내 홍경희(42) 씨와 막내아들 성민(10) 군은 지금 베이스캠프에서 남편과 아빠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험한 곳에 그만 갔으면 좋겠어요. 애아빠 덕분에 별의별 곳을 다 다녀봤지만 늘 후회해요. 목숨 걸고 하는 일이라는 걸 실감하니까요.”

이에 박 대장은 “집사람과 사귄 이후 25년 동안 위험한 일 하는 것만 보게 했으니 미안하죠. 집사람도 나 때문에 그동안 담이 커졌을 겁니다”라며 껄껄 웃었다. 이들 부부는 고교 시절 만나 결혼에 골인한 긴 러브스토리의 주인공.

이제 박 대장은 세계 산악·탐험계의 독보적인 존재가 됐다. 그가 도전할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대답이 쉽게 나온다.

“지도를 펴 봐요. 갈 데가 엄청나게 많지요. 앞으로는 후배 키우고 새로운 탐험을 개척하는 일을 병행할 생각입니다.”

그는 이번 원정을 함께한 오희준(吳熙俊·35·영천산악회) 대원과 올해 히말라야 갸셔브롬 1, 2봉 등정을 계획하고 있다.

레졸루트=전 창 기자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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