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기소-공소유지만… 서초동 초비상

  • 입력 2005년 4월 28일 03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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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의 형사소송법 개정 방향은 공판 중심주의 강화이고 그 핵심 내용은 검찰 조서의 증거 능력 부인이다.

이 방안이 실현되면 궁극적으로 검찰 수사권은 무력하게 되고 검사는 미국에서처럼 기소와 공소 유지만 담당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부 법조인들은 갑작스럽게 이런 방안을 추진하는 것이 정치권의 검찰 무력화 의도와 관련 있는 것 아니냐며 의혹의 눈길을 보낸다.

▽주요 내용=증거 능력이란 증거가 증명의 자료로 쓰일 수 있는 법률상의 자격을 말한다. 증거 능력이 없는 증거는 사실 인정의 자료로 채택될 수 없으며 공판 과정에서 증거로 제출할 수도 없다.

지금은 고문이나 강압에 의한 검찰 진술조서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검찰 조서의 증거 능력이 부정된다.

그런데 사개추위의 개정 초안은 원칙적으로 ‘모든’ 검찰 조서에 대해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사개추위는 검사의 법정 내 피고인 신문 폐지도 추진 중이다. 예컨대 살인 혐의 피고인에 대한 재판에서 검사는 피고인에게 “피해자가 사망한 시간에 범죄 현장에 있지 않았느냐”고 묻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검사는 피고인의 변호인이 피고인을 신문한 내용에 대해서만 이를 반박하거나 부인하는 내용의 신문을 할 수 있다.

▽수사와 재판의 혁명=조서의 증거 능력이 부인되면 그 조서는 법정에서 사실상 휴지나 다름없다.

이렇게 되면 검찰의 기능과 위상이 근본적으로 변한다. 지금 검찰이 하는 대부분의 일은 ‘휴지’를 만드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가 무력화될 것’이라는 검찰의 주장이 엄살이 아니다.

장기적으로 검찰은 미국처럼 수사 대신 기소와 공소 유지만을 담당하는 조직으로 바뀌게 된다. 미국에서 검사(District Attorney)는 수사는 하지 않고 재판 진행(공소 유지)만을 담당한다.

경찰은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궁극적으로 수사권은 경찰로 거의 다 넘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은 수사, 검찰은 공소, 법원은 판결 식으로 나눠서 하자는 것 아니냐”며 사개추위 안을 반겼다.

▽왜?=사개추위는 ‘공판 중심주의’를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검찰 조서의 증거 능력을 부인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공판 중심주의의 취지가 ‘모든 실체적 진실을 법정에서 밝히자’는 것인 만큼 ‘법정 내 진술’이 아닌 ‘검찰에서 작성한 조서’는 증거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논리다.

피고인의 방어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것도 중요한 명분이다.

그러나 검찰은 사개추위의 의도를 의심한다. 정치권의 ‘검찰 무력화’ 시도와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한 검사는 “사개추위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은 ‘검찰이 갖고 있는 제도 이상의 권력을 내놓아야 한다’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개추위는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와 한승헌(韓勝憲) 전 감사원장이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사무총장 출신인 김선수(金善洙) 변호사가 기획추진단장을 맡고 있다.

▽검찰 ‘사면초가’=검찰은 비상 상태다. 대검찰청이 27일 소집한 수도권 검사장 긴급회의에서는 난상 토론이 벌어졌다. “검찰권을 무력화시키겠다는 의도”라는 등의 격한 발언이 튀어나왔다.

김승규(金昇圭) 법무부 장관은 26일 사개추위 실무 검사들과 긴급 대책회의를 가졌고, 김종빈(金鍾彬) 검찰총장에게도 조직적인 대응책 마련을 요청했다.

한 검사장은 “수도권 검사장 긴급회의는 검찰이 내부적으로 느끼는 위기감을 공유하고 밖으로는 반대 의지를 강하게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미국처럼 범죄의 천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도 시민들은 경찰을 못 믿겠다며 검찰에 수사를 하라고 난리인데, 검찰에 수사 권한이 없어지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말했다. 다른 한 검사는 “실업자도 많은데 앞으로 가장 유망한 직업은 ‘범죄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점=우선 여론 수렴도 없이 갑작스럽게 추진하는 것이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법안의 개정안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수개월의 시일이 소요된다.

그러나 사개추위의 이번 초안은 불과 1주일여 만에 기습적으로 마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사개추위 관계자는 “엄청난 파장을 가져오는 법안 개정을 너무 급박하게 추진해 나도 놀랍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25일 사개추위 위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사법 체계의 근간을 바꾸는 것인 만큼 시간을 갖고 논의하자”고 설득했으나 위원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사개추위의 안은 미국식 수사와 재판을 지향하는 것인데 사회 구조와 범죄 문제 등이 근본적으로 다른 한국의 현실에 잘 맞겠느냐는 문제 제기도 많다.

한 법조인은 “사개추위 안대로라면 판사의 업무가 엄청나게 늘어날 텐데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수형 기자 sooh@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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