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콧 베인브리지씨 “백골 되어서도 한국 자유 수호”

  • 입력 2005년 4월 25일 03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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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여 잘 자게…”24일 경기 파주시 적성면 구읍리 중성산에서 지난해 3월 영국에서 숨진 6·25전쟁 참전용사 스콧 베인브리지 씨의 유골이 그의 유언에 따라 뿌려지고 있다(왼쪽). 그의 유골이 뿌려지는 동안 전우들이 울음을 참으며 지켜보고 있다. 파주=변영욱 기자
“전우여 잘 자게…”
24일 경기 파주시 적성면 구읍리 중성산에서 지난해 3월 영국에서 숨진 6·25전쟁 참전용사 스콧 베인브리지 씨의 유골이 그의 유언에 따라 뿌려지고 있다(왼쪽). 그의 유골이 뿌려지는 동안 전우들이 울음을 참으며 지켜보고 있다. 파주=변영욱 기자
스코틀랜드 전통 악기인 백파이프의 구성진 가락이 울리면서 영국 참전용사의 유골이 담긴 항아리가 열렸다.

죽은 이의 전우(戰友)는 350m 고지에서 항아리에 담긴 유골을 한줌 한줌 뿌렸고 뒤에 서 있던 백발의 참전용사들은 거수경례를 해 떠나는 동료의 명복을 빌었다.

유골은 바람을 타고 그가 지켜낸 이 땅 대한민국 구석구석으로 흩어져 갔다.

24일 오후 경기 파주시 적성면 구읍리 중성산 고지에서는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지난해 3월 숨진 스콧 베인브리지(당시 71세·사진) 씨의 유골을 뿌리는 행사가 열렸다.

그는 1952년부터 이듬해까지 14개월 동안 참전해 파주 일대에서 중공군과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유골이 뿌려진 중성산 고지는 그가 중공군의 포탄 파편에 맞아 피를 흘린 곳.

휴전협상을 앞두고 중공군의 공격이 날로 심해졌지만 베인브리지 씨는 이등병이면서도 침착하게 적과 싸웠다고 동료들은 말했다.

베인브리지 씨는 전쟁이 끝난 뒤 2001년 처음 한국을 방문해 놀랍게 발전한 한국의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고, 이때 자신이 죽거든 한국에 유골을 뿌려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는 지난해 3월 영국 뉴캐슬에서 참전용사 모임을 마치고 돌아가던 중 심장마비를 일으켜 숨졌고 1년여 동안 보관되어 온 그의 유골을 다른 참전용사 80여 명과 함께 17일 한국을 찾았다.

한편 그의 유골이 뿌려지기 전인 이날 오전 11시부터는 파주시 적성면 설마리 영국군 참전기념비 앞에서 수만 명의 중공군을 맞아 나흘간 고지를 사수한 영국군 대대를 추모하는 행사가 열렸다.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등 영연방 국가의 참전용사 100여 명과 그들의 유족 및 가족 등 100여 명, 워릭 모리스 주한 영국대사가 참석했다. 또 92세의 참전용사 로버트 해링턴 당시 중사도 자리를 함께했다.

매년 이맘때 영연방 참전국가의 용사들은 파주, 가평 등지의 영연방 국가 참전비를 찾아 그날의 정신을 되새기곤 한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모리스 대사가 대독한 기념사를 통해 “한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참전했던 용사들이 다시 격전지를 찾는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라며 “영국 국민과 함께 참전용사들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전했다.

참전용사들은 이날 적성종합고등학교 등 파주 지역 중고교 학생 72명에게 25만 원씩의 장학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행사에 한국 측 인사로는 유엔한국참전국협회 지갑종(池甲鍾) 회장과 재향군인회 간부들, 손학규(孫鶴圭) 경기도지사, 유엔사와 지역 사단의 장성 4명 등만이 참석했다.

파주=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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